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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화장실 거울 보며 주문 걸었다…조코비치, 기적의 역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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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트 도중 결정적인 슬라이딩 샷을 성공한 조코비치. 승리를 확신한 듯 그는 엎드린 채 양팔을 펼쳐 하늘을 나는 듯한 ‘비행기 세리머니’를 펼쳤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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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별에서 온 사람의 실력이다.”

호주 야후스포츠는 6일 대역전극을 펼친 끝에 윔블던 테니스 대회 준결승에 오른 노박 조코비치(세계랭킹 3위·세르비아)의 경기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실력이 외계인의 능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조코비치는 이날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끝난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에서 야니크 시너(13위·이탈리아)를 상대로 3-2(5-7, 2-6, 6-3, 6-2, 6-2)로 역전승을 거뒀다. 윔블던 26연승. 조코비치는 대회 7번째 우승 겸 4연패에 도전한다. 그는 2018·19년과 2021년 윔블던에서 우승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윔블던이 열리지 않았다.

경기 초반 조코비치는 몸이 덜 풀린 듯 실수를 연발했다. 시너에게 1, 2세트를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패색이 짙던 3세트부터 경기 흐름이 바뀌었다. 날카로운 서브, 포핸드 발리, 드롭 샷 등이 살아난 조코비치는 3, 4세트를 잇달아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만 35세의 조코비치는 치열한 경기 중에도 베테랑의 품격을 지켰다. 4세트 8게임 도중 조코비치의 드롭샷을 받기 위해 네트로 쇄도하던 시너가 미끄러져 코트에 뒹굴었다. 시너가 왼쪽 발목을 감싼 채 일어나지 못하자, 조코비치는 곧바로 네트를 넘어가 부축했다. 2001년생 시너는 만 21세의 신예다. 베테랑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관중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여유를 되찾은 조코비치는 5세트에서 환상적인 샷까지 선보였다. 4-2로 앞선 7게임 도중 오른쪽 코트 구석에 떨어지는 시너의 샷을 몸을 던지는 슬라이딩으로 다시 반대편에 꽂아넣는 백핸드 드라이브를 성공했다. 시너가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완벽한 패싱 샷이었다. 코트에 큰 대자로 뻗은 조코비치는 승리를 직감한 듯 양팔을 날개처럼 벌려 하늘을 나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경기를 중계하던 영국 BBC 해설자 크리스 브래드넘은 “세상에, 조코비치가 하늘을 난다”고 표현했다. BBC 스포츠 소셜미디어는 조코비치의 플레이와 세리머니를 두고 “새? 아니면 비행기? 알고 보니 조코비치였다. 디펜딩 챔피언은 말 그대로 코트 위를 날았다”고 전했다. 윔블던 소셜미디어도 “조코비치는 지금 비행 중”이라며 비행기 이모티콘을 붙였다. 이후 시너는 실수를 연발하며 크게 흔들렸고, 조코비치는 손쉽게 5세트까지 따내며 3-2 대역전승을 완성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어 승리를 쟁취한 베테랑의 투혼에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윌리엄 영국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도 기립 박수를 보냈다.

조코비치는 “중간 휴식 때 배스룸 브레이크(Bathroom Break·화장실 휴식 시간)가 터닝 포인트였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나에게 주문을 걸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털어놨다. 조코비치는 캐머런 노리(12위·영국)와 결승행을 다툰다. 메이저 대회 20회 우승으로 이 부문 공동 2위(로저 페더러)인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선두 라파엘 나달(22회·스페인)과의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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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강호들을 연파하고 생애 첫 윔블던 4강에 진출한 두 딸의 엄마 타티아나 마리아. 둘째 출산 직후인 지난해 4월 코트에 복귀한 그의 세계 랭킹은 103위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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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엄마 마리아도 4강 진출=여자부에선 두 딸의 엄마인 독일의 타티아나 마리아(35·세계 103위)가 기적을 썼다. 마리아는 5일 여자 단식 8강에서 율레 니마이어(97위·독일)를 2-1(4-6, 6-2, 7-5)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했다. 마리아의 종전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2015년 윔블던에서 거둔 3회전(32강) 진출이다. 1987년생인 마리아는 2013년 12월 첫째 딸, 지난해 4월 둘째 딸을 출산했다. 마리아는 2회전에서 32위 소라나 크르스테아(루마니아), 3회전에서 5위 마리아 사카리(그리스) 등 강호를 잇달아 꺾었다.

마리아는 4강에서 온스 자베르(2위·튀니지)와 맞붙는다. 자베르는 남녀를 통틀어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준결승에 오른 최초의 북아프리카-아랍 국가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누가 이겨도 새 역사가 된다. 자베르와 마리아는 평소 친분이 두텁다. 먼저 4강에 오른 마리아는 “친한 사이인 자베르와 (4강에서) 만나면 좋겠다”며 “둘째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베르는 “바비큐도 함께 먹는 친구다. 두 아이와 함께 준결승까지 오른 마리아는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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