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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국제칼럼] 중동도 낙태법 ‘뜨거운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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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이 있었다. 바로 여성의 임신중단(낙태)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50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현재 미국 내에서는 이 결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으로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경향신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법적 권리가 낮다고 인식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성들의 낙태자기결정권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여성들에게도 역시 적절한 임신중단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 메나(MENA·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낙태 수술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져 여성들의 생명은 위협받고 있다. 메나 지역에서 여성들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하는 국가는 이스라엘, 튀르키예, 그리고 튀니지뿐이다. 낙태가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내부의 현실을 뜯어보면 상당 부분 제한적이다. 성폭행이나 혼외 임신의 경우, 또 임신부의 건강이 좋지 않을 경우에만 낙태가 가능하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둘러싸고, 여성들에게 보다 폭넓은 결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튀르키예는 임신 10주 전까지는 낙태를 하는 데 어떤 법적 제한도 없다. 임신 10주 이상의 경우, 태아나 임신부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보건기관의 관리하에 낙태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낙태를 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공공병원에서는 낙태 수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부 사립병원에서만 낙태 수술이 제한적으로 용인되기 때문이다. 튀니지는 1973년 낙태법을 개정해 모든 범주의 낙태가 합법화된 유일한 아랍 국가이다. 그러나 튀니지에서 낙태가 용인된 것은 인구 증가로 인한 산아제한의 목적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인 사실이다. 튀니지에서는 임신 3개월 전까지는 임신중단권이 전면적으로 보장되며, 여성들은 낙태를 하기 위해 법적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최근 이란에서도 낙태법 개정을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졌다. 이란에서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협적일 경우에만 의사 세 명의 동의하에 낙태가 가능했다. 하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에 직면한 이란 정부는 인구 증가를 위해 2021년 낙태법을 개정하였다. 낙태를 하려면 의료인 두 명과 판사 한 명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으로 낙태법이 강화된 것이다. 동시에 인구장려 정책으로 낙태의 유해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강화하였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에서는 매년 약 30만~60만건의 불법 낙태가 시행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성들의 법적 권리는 낙태법을 포함하여 다른 지역과 비교하였을 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또한 이들 사회에서 법안들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법안 폐지로 미국 일부 지역의 여성들이 여성 인권 문제로 비판의 대상이었던 튀니지, 이란의 여성들보다 임신중단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어떤 지역의 여성의 몸도 재생산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어떤 국가의 여성의 몸도 정치적 논란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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