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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1·6 의사당 폭동 하원 청문회'의 성과 [김동석의 워싱턴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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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 미 연방의회 풀뿌리 활동가의 눈으로 워싱턴 정치 현장을 전합니다.

한국일보

캐서디 허친슨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6 의사당 폭동 하원 청문회'에 증언을 위해 참석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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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일은, 그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를 부정하고 뒤엎으려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가 극에 달했을 때다. 그런데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트럼프의 욕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사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방송을 듣던 트럼프는 극도로 화를 내고 점심 접시를 벽에 내동댕이쳤다. 트럼프를 밀착 수행했던 캐서디 허친슨(Cassidy Hutchinson)은 "식당 안은 깨진 유리로 엉망이고 나는 수건으로 벽에서 흘러내리는 케첩을 닦아야 했다"고 말했다.

한 달 뒤인 2021년 1월 6일, 트럼프는 통제 불능 상황이었다. 그날 트럼프는 무장 폭도들과 함께 의사당으로 가려고 했다. 업무상 지근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허친슨은 트럼프가 무장 폭도들과의 합류를 만류하는 경호원과 리무진 운전자를 폭행하는 걸 목격했다. 트럼프는 폭도들을 지휘해 의사당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경호원들은 필사적으로 그걸 막아냈다.

허친슨은 트럼프의 광적인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공격했던 187분간 트럼프가 대중이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증언했다. 지난달 28일 연방의회의 '1·6 의사당 폭동' 청문회에서였다. 이날 청문회에서 허친슨은 트럼프 백악관의 난맥상도 생생하게 폭로했다.

열성 여성 공화당원이던 허친슨은 청문회 증언 이후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핫'한 인물이 됐다. 그는 트럼프의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에 불과했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스티브 스켈리스와 테드 크루즈(텍사스·공화) 상원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한 뒤, 백악관 입법부에 인턴 직원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백악관 대변인을 수행 보좌했고, 비서실장 천거로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특별 수행역이 됐다.

허친슨의 지난달 의회 증언은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전의 판도까지 흔들고 있다. 연방의회 증언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정치적 재기에 우호적 여건을 즐기고 있었다. 여전히 뜨거운 공화당 진영의 트럼프 지지,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하원의장이 되려는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의 트럼프 달래기, 트럼프가 비축한 정치자금 등이 정치적 재기 모색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허친슨의 증언은 트럼프와 추종자들에게는 큰 상처를 남겼다. 허친슨의 증언으로 미국 연방정부, 즉 법무부는 트럼프에 관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연방의회 공화당 의원 상당수가 여전히 트럼프 눈치를 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은 2024년 대선에서 자신들을 승리로 이끌 후보가 트럼프인지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있다.

허친슨을 주인공으로 만든 '1·6 의사당 폭동 청문회'는 이 청문회를 주도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두 공동의장도 빛나게 만들었다. 민주당 베니 톰슨 의원과 공화당의 리즈 체니 의원이 그들이다. 두 중진 의원은 극명하게 엇갈린 당파적 이해관계를 버리고, 위원회를 철저하게 초당적으로 운영했다. 허친슨을 증언대에 세웠고 정치권 눈치 때문에 머뭇거렸던 중·하위직 관료들을 설득, 국가를 위해 진실을 증언하도록 도왔다. 그 과정에서 증인들에게 충분히 마음을 다스리고 결심할 시간을 주었고, 미 의회 역사상 최대 불명예 사건인 '1·6 폭동'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었다.

그런데도 두 의원은 공을 타인에게 돌리고 있다. 체니 의원은 "허친슨의 증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시민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에게 빚을 졌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김동석 미국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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