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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자기합리화에 빠진 가상자산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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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정수 금융부 기자




최근 루나 사태로 인해 사회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다. 국내 투자자들이 약 28만명 정도로 추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로 큰 피해를 본 사람들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범위를 세계적으로 확대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일각에선 코인 시장에 암흑기가 도래했다며,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그 누구도 책임지는 이는 없다.

상당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일을 두고 단순히 ‘거쳐야 할 성장통’으로 치부한다. “가상사잔 업계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큰 교훈을 얻은 셈”이라는 망발이 난무한다.

몇몇 이들은 오히려 가상자산 업계가 혁신 산업임을 감안할 때 과도한 규제로 성장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한다. 혁신이란 단어를 붙인 것만으로 가상자산 업계가 야기한 피해에 대해 면죄부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무엇이 혁신인지도 의문이다.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일상생활에 불러온 혁신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가 세상에 등장하고 나서 사람들의 금융 일상이 눈에 띄게 변화한 점은 없다.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은 은행에 들려 업무를 본다.

때로는 가상자산이 말하는 혁신이 그들만의 개념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일반적으로 코인에 투자한다고 할 때, 투자자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코인 발행자와 백서(White Paper) 등 정도다. 반면 주식은 해당 회사의 사업 방향성, 회사의 역사, 지배구조 등 공개된 정보들이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백서 등을 보면 그 코인이나 프로젝트의 내용을 알 수 있다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업데이트를 진행한 이더리움을 예로 들어보자. 이더리움은 “그레이 글레시어 네트워크 업그레이드가 6월 29일 블록 높이 1505만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이번 업그레이드의 주요 목적은 난이도 폭탄(Difficulty Bomb)을 2022년 9월 중순으로 연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자, 이 두 문장을 보고 이더리움이 어떤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겠나. 만약 그렇다면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전문가라는 이들도 해당 내용에 대해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자고로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혁신은 고사하고, 그동안 가상자산 시장에서 불거진 문제들은 기존 금융권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비슷하다. 특히 이번 루나 사태가 이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등장할 때만 해도 루나 코인은 혁신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루나는 대규모 매도에 취약했고, 신규 투자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그 가치를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임이 드러났다.

스테이블 코인(가치를 달러에 연동한 코인) 중 대표격인 루나가 무너지자 한순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사람들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신뢰도가 하락하자 이어 다른 코인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코인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등, 코인 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 가상자산 시장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제대로 관리하는 부서, 법조차 없었다. 탈세 등 불법의 온상으로 부각된 곳도 가상자산 시장이다. 탈세 규모도 매년 늘어 이제는 그 규모를 가늠하기도 어렵고 수법 또한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끼리 협의체를 만들어 자율 규제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물론 떠밀려 만든 감은 지울 수 없으나, 규제 공백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방치하는 것보단 낫다.

가상자산 업계는 그간 불거진 여러 문제점을 혁신이라는 우산 아래에 놓아둔 채 덮지 말고, 스스로 강도 높은 개선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지만, 그동안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는 방치돼 온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는데, 이를 거쳐야 할 성장통으로 치부하는 것은 백번 천번 양보해도 공감하기 어렵다.

이정수 기자(essenc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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