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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윗집 '층간 소음'에, 인터폰으로 "뇌 우동사리"...모욕죄일까 [그법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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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을 참지 못하고 아파트 인터폰으로 욕을 했다가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혐의는 모욕죄. 유·무죄를 두고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대법원이 최근 결론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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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갈등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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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53] "손님 시끄럽다"며 인터폰으로 욕한 아파트 주민…모욕죄 될까?



사건은 지난 2019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살던 A씨는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낸 손님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 정도 됐고요. 집에는 어린아이가 3명 있었습니다. A씨의 7살 아들, 그리고 A씨 손님이 데려온 3살, 4살배기 두 딸이 함께였죠.

아랫집에 살던 B씨는 그날따라 유독 윗집이 시끄럽게 느껴졌습니다. A씨가 손님을 자주 데려온다는 것에 불만도 쌓여 있었고요. 결국 인터폰으로 욕설을 쏟아냈습니다. 인터폰 구조상 이 발언들은 거실과 주방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XXX들, 도끼로 찍어버려, 이 XXXX들, 니 애비 데리고 와"

"가랑이를 찢어버려, 이 XXX들, 대갈빡(머리)을 빠개버려, 애비들이 XX이거든"

B씨의 딸도 가세합니다.

"뇌에 우동 사리가 들은 거야, 뭐야, 부모가 그따위니까 애XX한테 그따위로 가르치지"

"단독 주택으로 꺼져, 야 내 위층에 너 같은 것들이 사는 거 아주 끔찍하고 저주스러우니까"

결국 B씨와 B씨의 딸은 모욕죄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여기서 질문!



욕하면 다 모욕죄야?



관련 법령은!



형법을 보겠습니다. 제311조에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법에서 말하는 모욕은 뭘까요? 대법원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인 판단이나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경멸'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까요. 사전적 정의를 보면 '깔보아 업신여기다', '매우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낮추어 보다'라고 하네요.

형법 조문에는 '공연히'라는 말도 붙어 있죠. 모욕적인 표현을 '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수 있어야 성립된다는 겁니다. 맨 처음 소수의 사람이 들었더라도, 이들이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인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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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판단은?



B씨와 B씨의 딸에게 1심 재판부는 각각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무죄로 뒤집습니다. 왜일까요?

1심과 2심 재판부는 B씨와 B씨의 딸이 모욕적인 표현을 한 점은 모두 인정했습니다. "내 위층에 너 같은 것들이 사는 거 아주 끔찍하고 저주스러우니까" 등에서 A씨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B씨와 B씨의 딸이 같은 시간에 서로의 발언을 강화하면서 욕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각의 '대사'가 모욕인지 아닌지 개별적으로 따질 건 아니라고도 했죠.

그런데 '공연성'을 두고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이 갈렸습니다. 2심 재판부는 "당시 A씨 집에 손님과 손님의 어린 자녀들이 있긴 했지만, 이들을 '불특정 또는 다수'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손님이나 자녀가 밖에 나가서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닐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손님에게는 A씨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커서 이 사건을 밖에 말하고 다니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손님의 4살배기 어린 자녀는 층간소음 문제 등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다시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무죄 판결을 파기해 다시 돌려보낸다고 5일 밝혔는데요.

대법원은 A씨와 손님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2013년 처음 알게 되긴 했지만 별다른 친분을 쌓지는 않았고, 2018년 직장 동료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고 합니다. A씨가 직장을 그만둔 후에는 두 사람이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났다고 하고요. 대법원은 두 사람 사이가 '비밀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관계'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A씨를 보호할 마음이 커서 밖에다가 말하고 다니지 않을 것"이라는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막연한 추측에 기초한 것이라고도 했죠.

이번 사건이 '층간 소음'과 관련돼 있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매우 관심이 있을 만한 주제"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이야기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특히 인성이나 자녀 교육을 비난하는 자극적인 욕설과 발언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실제로 A씨의 손님과 4살짜리 자녀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대법원은 또 "인터폰은 별도의 송·수화기 없이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울려 나온다"면서 "B씨와 B씨의 딸이 욕설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범행을 저질렀다"며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습니다.

■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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