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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시시비비]임금 '구두개입' 전에 소득세 부담부터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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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정두환 트렌드 매니징에디터] "산 것도 없는데 20만 원이 훌쩍 넘네."
주말 저녁, 할인 마트 계산대에서 물건 값을 치르는 주부의 혼잣말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말마따나 그의 카트는 그리 값 나가는 품목도 눈에 띄지 않는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0%를 기록했다. 약 24년 만에 첫 6%대 상승률이다. 장바구니 물가는 6%라는 수치조차 납득되지 않는다. 통계와 체감 물가의 차이 탓이다. 구체적 수치 논쟁은 뒤로 하더라도 치솟은 물가가 서민들의 가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와중에 지난달 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다.
발언 요지는 이렇다. "소위 잘나가는, 여력이 큰 상위 기업들이 성과 보상 또는 인재 확보라는 명분 하에 경쟁적으로 높은 임금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과도한 임금 인상은 고물가 상황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서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그의 발언은 "도를 넘었다"는 노동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임금 인상에 대한 ‘구두 개입’, 내지는 임단협을 앞둔 기업들에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예상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낸 배경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고금리, 고물가에 공급망 위기까지 겹쳐 휘청거리는 우리 경제 상황이다 보니 새 정부는 물가 잡기에 명운까지 건 마당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발언은 적절치 못하다. 오히려 정부가 고물가의 원인을 기업의 경쟁적인 임금 인상 탓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다.
당연히 노동계는 발끈하고 나섰다. 추 부총리의 발언을 생존권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임금 인상이 치솟은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면 사실상 실질 임금이 감소하는 탓이다.
재계도 표면적으로는 추 장관의 발언을 ‘환영’하는 모습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특히 인력 부족난에 시달리고 있는 정보기술(IT) 업계는 임금 인상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추 부총리의 구두 개입을 수용할 상황이 아니다.

여기서 제언 하나. 기업에 대해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그의 발언에 진심을 담아내려면 정부도 뭔가 선물 보따리를 하나 풀어내야 한다. ‘소득세 감면’이라는 당근은 어떨까.

지속되는 물가 상승에도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체계는 15년 동안 요지부동이다. 2008년 당시 정부가 나눈 소득세 과표 구간별 세율은 △1200만원 이하 6% △46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 등의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다. 8800만원을 넘어서면 세율은 35%로 급등한다. 물가 상승 등으로 임금은 그 폭이 크든 작든 올랐는데 과표구간은 그대로다 보니 급여소득자의 세금 부담은 더 가파르게 늘어나는 구조다.

실제로 가족 구성 등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연봉 1억원인 급여 소득자가 이런 저런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 급여는 65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과거 직장인의 꿈으로 여겨졌던 ‘억대 연봉’의 현주소다. 오죽하면 기업과 근로자가 힘겹게 임금협상을 하고 나면 정작 웃는 것은 ‘정부’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까.

커질 대로 커진 정부의 씀씀이를 생각하면 감세는 분명 부담이다. 그래도 최소한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려면 정부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정두환 트렌드 매니징에디터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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