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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김호이의 사람들] 나태주 시인이 감각을 유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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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그는 1971년 등단해서 50년 넘게 시를 쓰고 있다.
슬럼프가 오거나 영감이 안 떠오를 때도 있을 텐데 어떻게 감각을 유지할까?
그와 함께 감각을 유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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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대에 등단해서 지금 70대가 됐는데 그 사이 시를 쓰는데 목표나 삶의 목표가 많이 바뀌었나요?
A. 젊었을 때는 시를 통해서 유명해지고 싶고 알려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었고 나를 위해서 시를 쓰고 싶었죠. 샘물의 시인데 내 안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퍼내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드러내는 시기였죠. 내 힘으로 성장하다 보니까, 약간 서툴죠. 그래서 그때는 나를 나타내는 특수성이 아주 강했어요. 근데 나이를 먹고 경륜이 늘어나면 저수지 시기가 와요.

남의 물을 받아서 물이 더 넓어지는 거예요. 밖에서 볼 때는 샘물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안에 샘물이 있어야 돼요. 이 단계는 샘물을 품은 저수지 단계예요. 샘도 있고 저수지도 있어요. 샘에서 나오는 건 개별성, 특수성이라고 봐야 돼요. 나의 특성과 개성,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서 오는 정서적인 요인과 다른 사람들을 공감해주는 요인은 저수지에요.

그때 그게 보편성을 나타내는 거예요. 그래서 내 개성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고 싶었던 시기예요.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인 여건이나 역할이 여러 가지 생기고 아버지가 되고 남편이 되고 직장에서 간부가 되면서 저수지의 시기가 온 거예요. 그때는 ‘너와 내가 하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예요. 그래서 목표가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삶의 목표에 있어서는 전반기에는 나를 위해서 살고 싶었어요. 내가 나를 드러내고 유명해지고 싶었어요. 지금도 나를 위해서 살지만 죽은 다음에 “저 사람은 자기가 가진 많은 것들을 내놓고 간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돈이든 글이든 재산이든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내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거예요. 인간은 나이가 들어서 죽을 때 아무리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 없어요. 장례식장에 가면 집문서 올라가 있어요? 통장 올라가 있어요? 금반지나 금목걸이 올라가 있어요? 아니죠.

그럼 뭐가 올라가나 보면 사람들이 가치 없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훈장이랑 책이 올라가요. 훈장과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아주 형편없는 거예요. 지금 현재 귀중한 건 내가 살아 있을 때 귀중한 거고, 죽은 다음에는 다 필요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죽은 다음에도 귀중한 걸 위해서 살고 싶어요.

Q. 시를 쓸 때 어떤 감정들을 느끼세요?
A. 마음속에서 욱하고 올라올 때가 있는데 그때 시를 쓰는 거예요.
행동으로 하지 않고 문장과 말로 그걸 해소시키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을 꽉 찬 검은풍선으로 볼 때 거기에 구멍을 내서 쪼그라들면 인간이 안정이 되는 거예요. 그것처럼 시가 검은풍선에서 빠져나가는 공기 같은 거고, 그걸 언어로 바꾸는 게 시예요.

Q. 고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나요?
A. 그건 죽은 다음에 평론가들이 평가하고 독자들이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쓰는 대로 시를 쓰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썼어요. 근데 나는 그것 자체에 대해 쓰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이 되도록 쓰고 싶어요.

그것에 대해 쓰다 보면 수사가 그것에 대해서 분석하고 묘사하고 그것에 대해서 보여주려고 해요. 근데 나는 그것 자체에 대해 쓰고 싶어요. 음식으로 비유하면 조미료를 넣는다는 거죠. 그래서 음식이 갖고 있는 본연의 맛을 가리거든요. 설탕을 넣으면 짠 것이 안 짜져요. 근데 사실 안 짠 게 아니거든요. 시인들이 계속 그것에 대해서라는 설탕을 넣은 거예요. 그래서 먹어도 먹어도 안정이 안 되는 거예요. 그것 자체에 대해서 쓰고 있고 시를 읽었을 때 그것 자체가 되는 거예요. 슬픈 시를 읽으면 슬퍼지고 따뜻한 위로의 시를 읽으면 따뜻해지고 위로를 받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시인들도 혼자서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 돼요.

Q. 시에 너라는 표현이 많이 들어갑니다. ‘너’는 누구인가요?
A. 이 세상은 두 개로 나눠져요. 나하고 너예요. 시에 기본 문장은 나예요.
나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나를 표현할 수 있어야 되고, 사랑을 의미할 때도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돼요,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기다린다는 말 속에 사랑이 들어가 있어요. 시는 주관적이라서 ‘나’ 다음에 나타나는 게 ‘너’예요.

저도 처음에는 ‘당신’, ‘그대’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급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라는 표현을 썼어요. 이 세상은 나 하나와 모두의 너로 이루어져 있어요. 내가 모든 너보다 소중하지만 내가 잘 살고 내가 유지되고 내가 좋아지려면 모든 너한테 잘해야 돼요. 그래서 나는 너한테 잘하는 방법으로 ‘너’라는 말을 많이 써요. 그리고 시에서 너라는 말을 많이 쓰면 독자들은 바로 나로 받아들여요.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말은 내가 한 소리지만 독자들은 “나를 꽃을 보듯 보는구나”라고 받아들여요. 그래서 너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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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사랑을 주 소재로 사용합니다. 사랑을 소재로 쓰는 이유가 뭔가요?
A. 시는 사랑 없이 쓸 수 없어요. 시의 원동력이 호기심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에요.
나이 먹어서 시를 못 쓰는 건 호기심과 사랑과 그리움이 없어서 못 쓰는 거예요. 호기심은 아이들 것이고 사랑은 청년 것이고 그리움은 뭔가 더 성장하고 싶은 사람의 것이에요. 그래서 이 세 가지가 끊임없이 있을 때 시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시인은 메이저가 되면 시를 못 써요. 마이너가 되어야 해요.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고 채우고 싶고 그립고 뭔가 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시를 쓰는 거예요. 인생은 연애처럼 살아야 돼요. 음악과 연애하고 친구들과 연애하고 꽃하고도 연애하고 등산하고도 연애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게 연애예요. 그것이 시의 소재고요.

Q. 어떻게 하면 재밌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A. 재밌는 건 남이 볼 때 재밌는 거예요. 유쾌한 것도 남이 볼 때 유쾌한 거고요.
유쾌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기도 유쾌하고 재밌어지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행복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행복해지는 거예요. 행복하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한 거고요.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너무 옛날 생각만 하지 말아요. 자기가 젊었던 시절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해보세요. 나는 62세 때 정년퇴직하면서 노인정에 안 간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리고 동창회 안 가고 선생님들 모임인 삼락회 안 간다. 나는 그 시간에 음악을 듣겠어요. 그 시간에 그림책 보고 나가서 풀꽃을 그리겠어요. 그리고 그 시간에 낮잠 자겠어요. 밤에 일어나서 글쓰기 위해서. 저는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5년 이상 해요.

상 받으려고 1등 하려고 공부하지 말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열심히 하다 보면 1등도 하고 상도 받는 거예요. 가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성공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거예요. 나는 책이 잘 팔리는 사람인데 잘 팔리기 위해서 시를 쓴 사람이 아니에요. 우선 나를 위해서 시를 썼고, 살기 위해서 시를 썼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썼고 많이 썼고 오래 썼어요. 그러다 보니까 책이 잘 팔리는 사람이 됐고요.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어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공은 따라 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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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coby1@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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