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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짱깨주의의 재해석 [重讀古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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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7년 4월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을 담은 그해 4월12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기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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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은 한국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 참석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5월 초에 아시아 국가 최초로 나토 사이버방위센터(CCDCOE)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6월 말에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회의에 참석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국은 자격이 없다고 반발하였다. 한술 더 떠서, 중국 관영 매체 'GLOBAL TIMES(환구시보 영문판)'는 지난달 27일, "일부 국가들은 스스로를 세계 지정학적 관계를 조종할 수 있는 '체스 플레이어'로 여기지만, 사실은 체스판 위에 있는 '강대국의 졸(pawn)'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 4개국을 겨냥한 말이다.

영문판은 'pawn', 중문판은 '卒子'라고 했지만 중국인의 평소 언어습관대로 썼다면 '개(狗)'라고 했을 것이다. 권세에 맹종하는 자를 멸시할 때, 흔히 개로 부른다.

'사기'에 이런 고사가 있다.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투던 때, 괴통이란 유세객이 '배수진'으로 유명한 한신(韓信)에게 유방에게서 독립해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토사구팽(兔死狗烹)'이란 말로 경고한다.

항우가 죽게 되면 그대 한신도 죽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그 말을 듣지 않다가 시기를 놓쳤고, 뒤늦게 모반을 꾀하다 발각되어 죽게 되었다. 최후 순간에 한신은 괴통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는 탄식을 남겼다. 이에 유방은 괴통을 잡아들여 문초한다. 그때 괴통의 대답에 또 '개'가 등장한다.

"도척의 개가 요(堯) 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개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은 것이다. 그때 나는 한신만 알았지 당신 유방은 알지 못했으니, 내가 한신을 위해 계책을 낸 것이 무슨 잘못이냐."

요는 성인이고 도척은 비록 흉포한 인물이지만, 개는 오직 자신의 주인만 알아보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기막힌 논리에 유방은 괴통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다른 부류의 개 이야기를 한다.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자, 당의 군대는 부여의 언덕에 주둔하면서 몰래 신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신라가 이를 알아차리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유신은 당나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때 태종무열왕이 주저하며 말했다. "당나라 군사가 우리를 위하여 적을 멸하여 주었는데 도리어 그들과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는가?"

김유신은 확실하게 선을 그어 말한다.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인데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스스로를 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

당나라가 신라를 없애려 한다면 그들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데, 무슨 동맹국 타령인가 하는 타박이다. 김유신의 개 담론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천명한다. 아무리 힘센 자라도 우리를 능멸하고 침노하면 적국일 뿐이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협력해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단호해야 한다. 조선 왕조의 관념론자들이 벌인 숭명배청(崇明排淸)식 제의(祭儀)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한중관계를 재해석한 신간 '짱깨주의의 탄생'을 둘러싼 논란이 요즘 뜨겁다. 이 기회에 작금의 한중관계를 원점부터 검토하는 것도 좋겠다. 다만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 침탈을 묵인한 채, 경협만 강조하는 태도는 사양하고 싶다. '임나일본부설'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서 동북공정도 폐기시켜야 한다.

한국일보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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