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특파원스페셜] "100원짜리 아이스크림 추앙해요" 중국의 '쉐롄 보위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3년째 0.5위안" 라오바이싱의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자객'에 맞서는 '아이스크림 호위병'

"주머니 안 털리게 조심" 관영언론도 '경고'

아주경제

13년째 0.5위안 가격을 유지하는 중국 서민 아이스크림 '쉐렌빙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베이징 관광명소 난뤄궈샹(南鑼鼓巷)을 지나다가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가 깜짝 놀랐다. 우유맛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이 15위안, 우리 돈으로 약 2900원이다. 요새 중국서 유행하는 말로 ‘아이스크림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당한 셈이다.

아이스크림 자객, 중국어로는 ‘쉐가오츠커(雪糕刺客)’라 불린다. 마트 냉동고에서 별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계산하려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비싼 가격에 지갑만 털린다는 뜻이다. 웬만한 아이스크림 가격이 10위안을 훌쩍 넘는 등 최근 중국 내 아이스크림 고급화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올 들어 무더운 여름철 중국에서 ‘아이스크림 자객’의 습격에 맞서 단돈 100원짜리 저가 아이스크림 보위전이 펼쳐지고 있는 배경이다.

”13년째 0.5위안” 라오바이싱의 아이스크림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값싼 서민 아이스크림, '쉐롄빙콰이(雪蓮冰塊, 이하 쉐롄)' 추앙 열기가 뜨겁다.

쉐롄은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에 소재한 27년 역사의 아이스크림 브랜드다. 봉지에 들어있는 레몬맛 얼음조각이 우리나라의 ‘고드름’ 아이스크림처럼 생겼다. 중국 바링허우(80後, 1980년대 출생 세대), 주링허우(90後, 1990년대 출생 세대)들이 어렸을 적 씹어 먹던 추억의 아이스크림으로도 잘 알려졌다.

가격은 1봉지에 0.5위안, 우리 돈으로 100원도 채 안 된다. 특히 13년간 이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 서민)의 마음을 파고들며 올 들어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쉐롄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리 공장장은 최근 시대주보(時代週報)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1개당 이윤이 0.1위안 정도였는데, 지금은 0.05위안(약 9.7원)밖에 못 남긴다”며 “다른 제품을 연구 개발할 여유도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쉐롄은 중국에서 가장 싼 서민 아이스크림을 대변한다"며 앞으로도 가격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리 공장장은 “쉐롄의 생산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게 아닌, 정(情)을 나누는 데 있다”고도 했다.

‘아이스크림 자객’에 맞서는 '아이스크림 호위병'

‘아이스크림 호위병(雪糕護衛, 쉐가오후웨이)’이라 불리는 쉐롄의 열혈 팬들도 생겨났다.

얼마 전 중국 온라인에 떠돌았던 비위생적인 아이스크림 공장 사진이 쉐롄 브랜드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는데, 아이스크림 호위병들이 나서서 "20년간 쉐롄을 먹었는데, 그게 더러운지 아닌지를 내가 모를까"라며 적극 방어전을 펼치기도 했다.

쉐롄 측도 나서서 결백함을 증명했다. 지난달 29일 쉐롄은 중국 숏클립(짧은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抖音, 틱톡의 중국버전)에 SNS 계정을 신설하고 아이스크림 생산 공장 영상을 올렸다. 청결하고 위생적인 공장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청결한 생산라인, 100% 자동화 생산, 0.5위안의 정(情), 안전한 식품"이라는 자막이 깔렸다.

쉐롄의 더우인 계정은 신설된 지 나흘 만에 팔로어 수 53만명도 돌파했다. ‘중국 막대 아이스크림계 에르메스’라 불리는 중쉐가오(鐘薛高) 팔로어 수(46만명)도 훌쩍 뛰어넘었다.

쉐롄을 향한 중국 누리꾼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중국 유명 영화나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해서 쉐롄을 응원하는 글을 가리키는 ‘쉐롄문학(雪蓮文學)’이란 신조어까지 탄생했을 정도다.

누리꾼들은 한국전쟁을 다룬 중국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長津湖)’ 대사에서 영감을 얻어 "이번에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치러야 한다.<설진호(雪津湖>”라고 아이스크림 전쟁 승리 의지를 다지는 글을 올리는가 하면, 중국 내 비싼 약값 논란을 다룬 영화 ‘나는 약신(藥神)이 아니다’를 ‘나는 아이스크림신(糕神)이 아니다’로 개조해 비싼 아이스크림 가격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주머니 안 털리게 조심” 관영 언론도 ‘경고’

아주경제

중국 '막대 아이스크림계 에르메스'라 불리는 중쉐가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 근래 들어 중국에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마트에서 1~2위안짜리 저가 아이스크림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중국인들은 아이스크림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처지를 한탄하며 ‘아이스크림 자유’를 상실했다고 하소연한다. 아이스크림 자유는 경제생활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인 '경제적 자유'에 빗대 생겨난 말이다.

중국 아이스크림 고급화 마케팅은 2018년 설립된 중쉐가오가 신호탄이 됐다. ‘막대 아이스크림계 에르메스’를 표방한 중쉐가오는 치즈딸기, 자스민, 딸기맛 화이트초콜릿 등 다양한 원재료 맛을 살린 중국 특유의 타일 모양 디자인으로 ‘왕훙(網紅, 인플루엔서) 아이스크림’으로 입소문이 났다.

중쉐가오가 지난해 출시한 ‘에콰도르 핑크’ 아이스크림은 구하기 어려운 핑크색 코코아를 사용해 한정 수량만 생산해 판매했는데, 개당 66위안이라는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아이스크림 고가 논란에 중쉐가오 창업주는 "비싸면 안 사 먹으면 그만이다”라고 대응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중쉐가오의 고급화 마케팅은 다른 아이스크림 제품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전체 아이스크림 평균 단가는 30% 올랐다.

아이스크림 업체들이 품질 향상은 뒤로한 채 고가 마케팅에만 치중하며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팽배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업계 평균 마진율이 60%에 달하는데, 고급 아이스크림의 경우 70%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이러한 세태를 꼬집으며 “화려한 포장의 아이스크림이 당신의 주머니를 털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성적 소비를 장려하기도 했다.

베이징=배인선 특파원 baeinsun@ajunews.com

- Copyright ⓒ [아주경제 ajunews.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