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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원희룡 국토부장관, SRT 탈선 사고가 '코레일 직원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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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지난 1일 부산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SRT 338편 열차가 대전조차장 역에서 궤도를 이탈해 탈선했다. 이 사고로 11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7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모두 가벼운 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열차가 탈선했음에도 큰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코레일 사고처리 대응팀은 밤새 복구 작업을 벌여 2일 오전 7시경부터 열차 운행을 정상화시켰다.

사고원인은 국토부 항공철도조사위원회의 정밀조사 결과로 밝혀지겠지만 선로 결함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폭염에 따른 선로 늘어남이 사고 원인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선로 장출이라고 부르는 선로 이상은 35도 이상 고온의 기온이 상당 기간 지속되어야 발생한다.

과거에 선로는 여름에 철이 늘어나 선로가 비틀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선로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었다. 그러나 폭염이 과도하게 지속되면 선로가 늘어나 선로 사이 간격을 메우고 서로 밀어내 선로가 뒤틀린다. 하지만 현대식 고속선로는 선로 간격을 두지 않고 이음매 없이 용접으로 연결시킨다. 이로 인해 온도 상승에 따른 선로 길이 증가로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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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부산역을 출발해 서울 수서역으로 가던 SRT 열차가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탈선해 1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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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의 문제가 아니라면 차량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열차 바퀴, 즉 차륜에는 탈선 방지를 위해 한쪽 끝에 프렌지라는 턱이 있다. 이 턱이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마모 한도 이상으로 닳아 버리면 탈선 위험이 높으므로 삭정이라는 정비를 해주거나 교체를 해야 한다. 또한 차륜 마모 한도가 기준치 이내일 경우에도 이상 충격에 따른 탈선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고 현장은 상시적 시설 관리를 받고 있으며 시속100~110킬로미터의 속도를 내는 곳이므로 고속 주행에 따른 충격도 크지 않은 지점이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면 노반 부실이 원인 일 수 있다. 계속된 폭우로 자갈이 유실되거나 지반이 약해질 경우 선로를 받치는 힘이 상실된다. 유지보수 과정에서 선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어도 사고가 유발된다.

보도에 따르면 선행 열차가 선로 이상을 감지했다. 사고 전 선로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선행 열차로부터 보고를 받고도 후속 열차에 대한 경고나 감속 조치 등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인적 오류가 개입되어 사고를 막지 못했다.

결국 이번 사고는 보고 과정에서 생긴 휴먼에러라는 측면과 시설이나 차량의 결함이라는 기술적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탈선을 일으킨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고원인은 생각보다 밝혀내기 힘들 수도 있다.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더라도 사고 책임은 사고 차량 운행사인 SR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로 유지보수 및 차량 정비를 책임지는 코레일로 귀속될 것이다. 국토부의 이상한 경쟁체제가 만든 이원화로 책임은 코레일이 지고 수익은 SR이 갖는다. 부실을 떠안는 기관 코레일의 기이한 운명이다.

사회가 사고를 대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말해준다. 사고 발생 원인을 조사하는 이유는 사고 유발 조건 제거와 안전시스템의 보완을 통한 사고 재발 방지에 있다. 이미 철도선진국 사고조사의 기본원칙은 책임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 전환된지 오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원인 제공자 처벌이나 조직 기강 잡기의 기회로 활용하는 천박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이번 사고에 대한 발언은 충격적이다.

"사고 차량을 운행한 SR, 차량 정비·유지보수 등을 담당하는 코레일 직원들이 자신의 가족이 열차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긴장감을 갖고 업무에 임했으면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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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일 국가철도공단 수도권본부 회의실에서 경부선 SRT 궤도이탈 사고와 관련해 사고분석 내용을 보고받고 향후 대책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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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사고를 노동자들의 무책임과 기강해이로 돌리고 있다. 더구나 불량식품 회사를 질타하듯 자신 가족이 열차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할 수 없다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코레일과 SR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국토부 장관이 단 하루라도 이 폭염 속에 선로를 보수하고 차량을 정비하고 열차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을 둘러봤다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이다.

게다가 긴장감이 있었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라는 주장은 모든 것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술적 언사와 다를 바 없다. 합리적 근대 이성이 도입된 지 수 세기가 지났음에도 이 같은 말을 듣는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철도안전에 대한 장관의 철학은 아예 무지에 가까워 안타까울 뿐이다. 철도안전은 설사 인간이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잃더라도 시스템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작업 시간 내내 각성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장관이 질타하고 싶은게 무사안일 주의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나는 사고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열차를 점검하고 운행했다. 사고가 난 선로 옆을 사고 발생 전에 수 백명의 승객을 태운 채 서울행 열차를 몰았다. 운행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전방 상태와 계기판의 정보를 확인하고 출력을 높이거나 줄이고 제동을 쓰고 무선교신을 했다. 이 같은 작업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기관사라면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표준작업이기 때문이다. 철도 현장의 모든 사람 들은 승객을 가족보다 귀히 여긴다. 철도 사고의 처참함을 잘 아는데 어느 철도노동자가 자기 가족이 타지 않는다고 대충 정비하고 운전하겠는가? 승객의 안전이 나의 안전이고 나의 안전이 승객의 안전이다.

철도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근인과 원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엉뚱하게 기관혁신을 이야기 한다. 국토부의 고질병이다. 지난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때도 사고를 빌미로 코레일과 SR 통합 과제를 뒤엎어버렸다. 통합과제와 사고의 연관성이 없었고 심지어 사고원인도 국가철도공단의 잘못된 시공이었음이 드러났지만 국토부의 의도는 관철된 뒤였다.

이번 사고의 특성은 사람의 실수, 즉 인적 오류의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대구역에서 무궁화호와 KTX의 충돌사고는 기관사의 신호오인이 원인이었고 강릉선 KTX 탈선 사고는 국가철도공단의 신호배선시공 잘못이었다. 기술적 결함, 부실시공, 천재지변, 인적오류, 테러 등 철도 사고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으며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조건이란 없다.

철도 사고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철도선진국이라는 독일에서도 6월 3일 열차가 탈선해 5명이 사망하고 44명이 다쳤다. 이중 15명은 중상을 입을 정도로 큰 사고였으며 사망자 중 2명은 우크라이나 피난민이어서 아픔을 더했다. 이렇게 큰 사고를 겪은 독일은 교통부장관이 철도노동자들을 비난하거나 독일 철도공사의 개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시스템 구축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란에서도 6월 8일 열차가 탈선해 22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미국에서도 사고가 이어졌다. 6월 21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폭염에 늘어난 레일 위를 달리던 열차가 탈선해 일부 승객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6월 27일에는 암트랙 열차가 미주리주 멘던에서 덤프트럭과 충돌 후 탈선해 3명이 숨지고 50명이 부상을 입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사고는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비극이다. 우리가 사고를 어떻게 마주하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안전은 달라진다. 전국에서 열차가 제시간에 운행되고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은 우아한 백조의 물 밑 발길질처럼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연착을 밥 먹듯이 하는 세계 여러 곳의 철도와 달리 한국철도는 국제철도연맹에서도 인정할만큼 높은 정시운행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남다른 노력이 철도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원희룡 장관은 사고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상정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엄중한 책임은 결국 기관 혁신이며 이 혁신의 주요 내용은 비용절감을 통한 적자탈출이다. 국토부가 방만운영이라며 철도운영기관을 압박하게 되면 그만큼 정비도 유지보수도 부실해진다. 과거 비용 절감차원에서 추진되었던 안전인력 감축, 정비주기 축소, 저가 부품 구매 같은 일들은 철도사고를 더 불러오게 된다. 또 안전을 위한다며 정비를 민간기업에 넘기게 되면 이른바 부분별 떼어먹기, 은밀한 민영화 작업이 수행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국가기간산업인 철도를 훼손하지 못해서 안달인지 이해할 수 없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추켜올려지며 저평가 우량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취임 후 추진하는 철도 정책과 사고 대처 모습을 보면 구시대 낡은 가치관에 사로잡힌 부처의 수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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