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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연세대에 “노동자 비난한 당신 부끄럽다” 대자보…‘공정감각’ 비판한 강의 계획서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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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재학생 3명, 청소·경비노동자들 시위에 ‘학습권 침해’ 손배소 제기

학교 중앙도서관 앞에는 ‘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 당신 부끄럽다’ 대자보 붙어

소송 제기 학생들 비판 담긴 강의계획서도…“그들의 ‘공정감각’은 무엇을 위한 감각인가”

세계일보

임금 인상 등을 학교 측에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온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재학생 3명의 ‘학습권 침해 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과 맞물려 ‘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자보가 이 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붙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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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인상 등을 학교 측에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온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재학생 3명의 ‘학습권 침해 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과 맞물려 ‘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자보가 이 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붙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소송을 제기한 이들의 ‘공정감각’을 꼬집는 것으로 읽히는 연세대 교수의 2학기 강의계획서도 빠르게 확산했다.

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에는 ‘당신이 부끄러웠으면 좋겠습니다 :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공동체원들께’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최근 부착된 것으로 알려진 대자보에서 자신을 ‘같은 공동체에서 학습하고 있는 구성원’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연세대학교 구성원에는 학생, 교수와 교직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도 포함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공간에서 학습하는 동안 수많은 시위와 집회의 현장이 백양로를 관통했다”며 “이런 공론의 과정, 숙의의 과정 그리고 민주주의의 토대로 작동하는 당연한 과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자보는 시위 원인이 ‘투쟁 주체’에 있지 않다며 “공동체 구성원이 투쟁하는 이유를 명확히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땅히 받아야 하는 최저임금 인상분만큼의 급여와 샤워실 설치 보장 그리고 부당한 구조조정 반대를 내세우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언급하면서다. 작성자는 ▲계급적인 위계 속에서의 폭력적인 불평등 지속 생산 ▲구성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구조를 시위의 근본 원인으로 진단했다. 이러한 부조리 연쇄를 끊으려 나온 ‘연대의 서사’는 소송으로 끊겨버렸다는 취지의 비판도 더했다.

앞서 A씨 등 재학생 3명은 지난달 김현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과 박승길 부분회장을 상대로 수업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 등은 소장에서 캠퍼스 내 시위 소음으로 수업 들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등 명목으로 노조 측에 약 640만원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등은 지난달 초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업무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들을 고소했었다.

김 분회장은 같은 달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올해) 최저임금을 정부에서 440원(올리는 것으로 내용)이 나왔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것(440원 인상한 만큼)만 (인상해) 달라는 이야기”라고 시위 배경을 밝혔다. 이어 퇴직자만큼의 인원 충원과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는 점도 언급했다. 학생들의 고소 소식에는 “노동조합 생긴 지 15년인데 그런 역사는 한 번도 없었다”며 “학생들에게 될 수 있으면 피해를 안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이 고소를 했다니 너무 안타깝다”며 “노동조합이 처음 생길 때 학생들이 많이 도와줬고 졸업도 했는데 아직 도와주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고 부연했다.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사람답게 대접받고 싶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 높은 이들을 향한 혐오가 번지고 있다”며 “학생들의 지지와 연대로 과대 대표된 혐오에 맞서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노동자 투쟁에 연대한다는 내용의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 서명에는 22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서명 인원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에 대자보는 “청소·경비노동자들과 그에 연대하는 공동체원들은 그동안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용한 방법으로 오래, 길게, 끊임없이 투쟁했다”며 “무의미한 사측의 교섭과 학교 본부의 책임 회피가 돌아온 상황에서 이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당신의 학습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노동자의 삶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존중의 공생을 모색하지 않고 노동자를 비난하는 평면적인 당신이 부끄럽다. 그리고 당신의 발화가 마치 연세대학교 공동체 전체의 발화인 것처럼 드러나는 것이 같은 학생으로서 부끄럽다”고 날을 세웠다.

나아가 “자신이 어떤 위치의 존재만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지 한 번이라도 반추하기를 바란다”며 “언젠가 우리가 연대하며 구조를 향해 부조리함을 표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구조’이자 ‘원청’으로 비유되는 학교 측에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세계일보

임금 인상과 샤워실 설치 등을 학교 측에 요구하며 교내에서 시위 중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현수막이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 걸려 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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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문화인류학과의 나임윤경 교수는 소송을 제기한 학생을 비판한 것으로 비치는 2학기 강의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는 2학기 ‘사회문제와 공정’ 수업 강의계획서에서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다.

트위터 등을 타고 퍼진 강의계획서에서 나임교수는 “눈앞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떠한 거름(filtering)도 없이 ‘에브리타임’에 쏟아내는 혐오와 폄하, 멸시의 언어들은 이곳이 지성을 논할 수 있는 대학이 맞는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한다”며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은 대학 내 혐오 발화의 온상이자 일부의, 그렇지만 매우 강력하게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표를 자처하는 청년들의 공간”이라고도 썼다. 그는 “대학이 이 공간을 방치하고서는 지성의 전당이라 자부할 수 없다”며 “연세대가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는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계획서는 이 외에 “기회와 자원에 있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는 한국의 20·30이 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특권을 향유하는 현재의 기득권을 옹호하는지는 가장 절실한 사회적 연구 주제”,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나 절박함이 ‘나’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할 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축적된 부당함에 대해 제도가 개입해 ‘내’ 눈앞의 이익에 영향을 주려할 때, 이들의 공정감각은 사회나 정부 혹은 기득권이 아니라 그간의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친다”는 문장도 포함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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