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20세기 최고 거장" 찬사 받은 연극연출가 피터 브룩 별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셰익스피어 작품들 재해석으로 명성

장장 9시간짜리 연극 ‘마하바라타’ 대표작 남겨

영국에서 라트비아계 부모 사이에 태어나 자란 뒤 프랑스에 정착해 장년기과 노년기를 보낸 세계적 연극연출가 겸 영화감독 피터 브룩이 3일(현지시간) 파리에서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끝까지 영국 국적을 유지했으나 프랑스 언론들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연출가”라며 일제히 추모했다.

세계일보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고인은 192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러시아와 인접한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출신 이민자로 굳이 따지자면 러시아인과 유대인의 혈통이 섞여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고인은 생전에 “나는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인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17세에 연극연출가로 무대에 데뷔했을 만큼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과시했다.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예술감독이 되었을 당시 고인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주로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연출하며 연극사에 길이 남을 화제작을 쏟아냈다. ‘리어왕’(1962), ‘한여름 밤의 꿈’(1971)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이 무대에 올랐을 때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연출가가 만든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작품”이라며 “만일 브룩이 이 작품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해도 그는 연극사에 한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다만 고인 특유의 파격적 연출이 언제나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잔혹함, 노골적인 성적 표현, 난해한 언어 등으로 말미암아 평단은 물론 관객 사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보수적 비평가들은 고인의 작품을 ‘추한 연극’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고인은 50세 무렵인 1974년 고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파리 10구에 있던 소극장 ‘부프 뒤 노르’(Bouffes du Nord)를 인수해 연극을 탐구하는 국제연구센터를 만들었다. 그 뒤 2010년까지 직접 소극장을 운영하며 수많은 실험적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세계일보

피터 브룩이 1974년부터 직접 운영했던 프랑스 파리 10구의 소극장 ‘부프 드 노르’. 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나온 ‘마하바라타’(1985)는 호평과 악평이 엇갈렸으나 오늘날 고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작으로 자리매김 했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원작으로 삼고 16개국 출신 배우 25명을 출연시켜 장장 9시간 동안 원대한 종교관과 세계관을 표현했다. 1985년 프랑스 아비뇽 초연 이후 스위스, 영국,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순회공연을 했으며 나중에는 고인이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실제로 고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영화감독으로서의 경력이다. 1963년 소설 ‘파리 대왕’, 1967년에는 연극 ‘마라/사드’를 각각 원작으로 한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르몽드를 비롯한 프랑스 언론들은 “현대 연극의 전설”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연극연출가” “가장 혁신적인 감독” 등 수식어를 써가며 고인의 타계를 애도했다. 유족으로 감독 겸 배우인 딸 이리나 브룩 등이 있다. 선친과 달리 이리나는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