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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세계 10위권 경제에도 ‘제 값’ 못 받는 한국 증시 [한강로 경제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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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긴축·경기 침체 우려 속 세계 주식시장 급락

中·日 등…명목 GDP 상위 10개국, 역대 최악 성적표

韓 주식시장, 외국인 투자자 움직임에 영향 많이 받는 구조

전문가 "'쾌도난마' 식 해결 어려워…장기 계획 세워야"

세계 경제난 속…정부 "수출 활력 높일 대응 체계 구축할 것"

세계일보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27.22p(1.17%) 내린 2305.42로 마감한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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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스피가 올해 상반기 20% 이상 하락했다. 전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시키고 긴축에 돌입한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충격이 거센 것이 이유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 주식시장에 비해 한국 코스피의 하락폭이 크다. ‘코리안 디스카운트’ 현상이 이번에도 일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4일 세계일보는 이러한 상반기 우리 주식시장의 모습을 담으며,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원인과 대책등을 분석했다. 아울러 계일보는 오는 13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국내외 석학들을 초청해 <한국 자본시장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 제안>을 주제로 <2022 세계 증권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고물가에 따른 경기 위축 우려가 가시지 않으면서 정부 당국 내에서는 하반기 수출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부는 무역금융을 늘려 수출기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상반기 급락한 주식시장…韓 증시 하락폭 두드러져

고강도 인플레이션으로 촉발된 미국발 긴축정책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전 세계 주식시장은 올 한 해 급락했다. 미국 다우존스 종합(-15.3%)을 필두로 중국·일본·독일 등 명목 GDP 상위 10개국이 줄줄이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산출하는 글로벌 주가 지수는 1∼6월에 20.9% 떨어졌다. 이는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를 넘어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하락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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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마감한 코스피가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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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는 더 참담하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반기 한국 코스피는 21.7% 하락했다. 한국보다 국가별 명목 GDP가 많은 11개국 중 증시 하락률이 더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이 하락장에서 더 휘청인 이유는 뭘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기업들의 호실적을 감안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측면을 빼고는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실제로 수출주도형 국가이자 북한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한국은 외풍에 취약하고,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큰 것도 사실이다.

올해 상반기만 봐도 외국인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약 18조225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의 순매도 행렬이 계속되면서 이 기간 동안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시가총액 기준)은 29.5%에서 27.5%로 2%포인트 가량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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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최근 몇년간 증시를 주도하던 ‘동학개미’ 열풍도 확 꺾였다.

6월 기준 코스피에서 개인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매수·매도대금 평균)은 4조3009억원으로 2020년 2월(3조7020억원)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6월에 비하면 무려 3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 동학개미들의 피해 누적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1일까지 개인 순매수 금액 기준 상위 10개 국내 종목의 평균 주가 등락률은 -30.5% 수준이었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이자 코스피 ‘대장주’로 불리는 삼성전자는 지난 1일 5만6200원으로 2020년 9월 이후 신저가를 기록했다. 바로 전날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1nm=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 소식을 발표했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 증시의 오랜 숙원인 MSCI 선진지수(DM) 편입도 또 다시 좌절됐다. 외환시장 개방 등 정부의 강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당장 시장접근성 개선이 없다는 점이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10일 MSCI가 발표한 국가별 시장 접근성 평가에서 한국 증시는 낙제점을 받았다. MSCI는 전년과 동일하게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정보 접근성 부족(영문 IR 등) △역내외 외환시장 접근 제한 △코스피200·코스닥150 기업 대상으로만 허용되는 제한적 공매도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위주의 기업생태계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산업 구조 △오너일가 위주의 경영 풍토 등이 복합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회계투명성 강화, 세법 등 법률 개정과 같은 실질적인 노력을 장기간 꾸준하게 지속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자본시장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이라며 “짧은 시간 내에 ‘쾌도난마’ 식으로 한칼에 해결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만큼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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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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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저평가’된 한국 증시 대책 마련해야

“20년이나 누적된 얘기인데 이제 ‘디스카운트’라고 이야기할 시기는 지난 것 같다. 한국 주식시장의 수준이 현재 그 정도란 뜻으로 봐야 한다.” 한 증권업계 베테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소 냉정하게 답했다.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문제는 업계에서 그만큼 오래되었고, 해묵은 주제라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원인도 다양하다. 수출주도형 경제라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적인 문제를 지목하는 이들도 있고, 북한과의 대치 상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점을 꼽는 이들도 있다.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금융시장 등도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안타까운 현상을 초래한 측면도 분명 있다. 하지만 외부 요인에만 탓을 돌리면 대책이 난망한 만큼 우리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내부적 요인’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마침 새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 전략을 국정과제로 내건 만큼 이 기회에 투자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제도 개선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긴축, 경기침체 등 외부적 요인을 두루 감안해도 한국 주식시장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 대주주 위주의 기업경영과 소액주주 홀대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여전히 총수, 대주주 위주의 기업경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들을 견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총수가 잘못해도 제재는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면 불법행위를 한 총수 일가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오너 일가의 경영방식이 대규모 장기투자 등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자본시장 관점에서는 소액 주주들의 이해와 상충되는 경우가 적잖다. LG화학은 전지사업을 분리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해 상장시켰는데 LG그룹 전체로는 신규자금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났지만, LG화학 주주들의 입장에서는 알짜 사업부가 떨어져나가면서 기업 가치가 하락하는 유탄을 맞았다. 분할 결정 당시 LG화학 지분을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과 일부 소액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결론을 뒤집진 못했다. 동원산업은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상장된 기업(자회사) 788개 중 원래 상장된 기업(모기업)의 지배를 받는 자회사는 157개였다. 기업을 ‘쪼개서’ 상장하는 것인데, 자회사 상장 후 동시 상장된 모회사의 기업가치는 유의하게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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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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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을 꺼리는 기업 풍토도 주식시장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22년 6월 말 기준 한국의 배당수익률은 2.63으로 직전 연도(1.52)에 비해서는 늘어났지만 전체 조사국가 25개국 중 19위로 여전히 하위권에 속해있다. 영국의 경우 3.95, 대만은 3.91, 이탈리아는 5.39였다.

대주주 위주의 경영행태를 바꾸는 것이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계속 제기된다.

올해 4월 SM엔터테인먼트와의 표대결을 통해 배당과 감사선임을 이끌어낸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통화에서 “최근의 저평가 경향은 경기순환적 요인이 크지만 이를 떠나 ‘한국 기업들은 왜 이렇게 주가가 낮은가’는 다른 문제”라며 “한국 주식은 재산권이 없다. 주주가 이사를 임명하지만, 이사가 주주를 위해 일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정책이나 제도 개선만으로 문제 해결을 하긴 쉽지 않은 구조라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얘기가 벌써 20년이 됐지만 사실 어떤 것도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도 사실 검증이 되진 않았다”며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에서 원인을 제공한 건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가 너무 높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한국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은데 왜 한국사람들은 직접투자를 할까를 생각해보면 한국의 펀드수수료가 너무 비싸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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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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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하반기 수출 낙관 어려워“

고물가와 글로벌 경기 위축 우려 속 무역수지 적자라는 악재까지 맞이한 정부가 수출 활력을 높이기 위해 범정부 수출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추 부총리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무역금융 확대 등 수출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추 부총리는 “올해 상반기까지의 수출 성적표를 살펴보면, 수출 실적이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면서도 “세부 내역과 향후 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반기 수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은 역대 최고 실적인 3503억달러를 달성했지만 에너지 수입액이 전년 대비 88% 증가하는 등 수입액이 수출액을 뛰어넘으면서 상반기 무역수지는 103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 글로벌 긴축 가속화에 따른 주요국 성장세 둔화 및 교역량 위축 등으로 하반기 수출 신장세가 약화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높은 원자재 가격 등이 이어져 하반기 무역수지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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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3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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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는 수출 중소·중견기업 등에 대한 무역금융을 올해 계획한 261조3000억원에서 301조3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기업들의 수입선 다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수입보험도 1조3000억원 규모로 공급하고, 수입환변동보험 적용 대상 확대 등을 통해 고환율로 인한 기업들의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 수출업계의 물류 부담 완화와 무역 체질 개선 등에도 나서기로 했다.

추 부총리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특성상 해외발 충격이 물가·금융시장을 넘어 수출·투자 등 국내 실물경기로 파급될 가능성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물가 안정을 최우선 대책으로 꼽고 있지만, 당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은 상태다.

통계청이 오는 5일 발표하는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11월(6.8%) 이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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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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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6월이 물가 고점일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국제 에너지·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변수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으로 외식·여행 등 소비가 크게 늘어 개인 서비스 물가 상승 압력도 상당한 상황이다. 게다가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부터는 지난 1일부터 적용된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분도 반영된다.

한편, 추 부총리는 지난 1일 오후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갖고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도입 등을 논의했다. 옐런 장관은 에너지 가격 안정과 러시아의 수익 감소를 위해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시행이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추 부총리는 “도입 취지를 이해한다”고 답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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