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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미친 기름값'에 돈 벌자 "횡재세 물리자"는 국회…5조 적자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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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세종=유재희 기자] [편집자주]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물리고, 가격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가격에 상한선을 정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한달여 사이 국회와 정부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자유'를 표방한 정권이 출범한 뒤 반(反)시장적 포퓰리즘 정책들이 쏟아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에너지 인플레이션 시대를 헤쳐갈 다른 해법은 없을까.

[MT리포트]反시장 에너지 포퓰리즘(上)


"돈버니 세금 물리자"는 국회…'가격' 묶어 피해 떠넘기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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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를 35차례 언급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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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윤석열 대통령 취임사 중)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와 정부에서 오히려 에너지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지면서 시장원리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름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정유사의 초과이익을 환수하려 하고, 정유사에 대해 표적성 담합 조사에 착수한 게 대표적이다. 민간 발전사들의 전력 판매 가격에 상한선을 씌워 가격을 통제하는 것도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이다. 이 같은 반(反)시장적 정책이 시행될 경우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돈 벌자 "횡재세 물리자"...5조 적자 날 땐?

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113.4달러(약 14만7000원)였다. 최근 10년 사이 최저점이었던 2020년 4월22일 13.52달러에 비해 739% 뛰었다. 같은 기간 국내 전국 평균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ℓ) 1296.7원에서 2144.9원으로 65.4% 올랐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에도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충분히 내리지 않자 지난달 27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합동점검반을 구성, 정유업계의 담합 등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현장점검에 나섰다. 앞서 이명박정부는 기름값을 잡겠다며 2011년 정유사에 담합 혐의로 43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정유사들이 제기한 불복 소송에서 패소한 바 있다.

정치권은 여야 구분없이 정유사에 대한 초과이익 과세, 이른바 '횡재세' 도입을 위한 군불을 때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정유업계는 최대실적을 달성했다"며 업계에 고통분담을 요구했고, 같은 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이틀 뒤 "정유사가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특정 업종에 한해 초과이익에 과세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전례가 없다. 대기업인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현재 25%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만약 여기서 추가로 세금을 부과받는다면 이중과세에 해당하고, 조세의 형평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윤영선 전 관세청장(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기업에 대한 초과이익 과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적용된 바 있다"며 "지금은 전시나 국가재난과 같은 급박한 상황으로 볼 수 없는 만큼 초과이익 과세에 대해 국민이나 시장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과거 저유가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때 지원을 하지 않은 국가가 대규모 흑자에 대해선 추가 과세를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정유4사는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연간 5조32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또 최근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향후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정유사들로선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불가피한데, 이때 횡재세까지 부과된다면 정유업계는 이중고에 빠지게 된다.

정유사에 대한 횡재세가 소비자 후생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초과이익이 환수될 경우 정유사들은 생산량을 줄일 유인이 생기고, 이 경우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또 초과이익이 박탈된다면 정유사들로선 투자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설비 부족과 성장동력 상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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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도매가격 상한제로 민간 발전사에 피해 강요

정부는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한전이 전기를 사올 때 지불하는 전력도매가격인 SMP(계통한계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이 경우 전기를 만들어 한전에 팔아온 민간 발전사들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점이다. "반시장적 조치"라며 민간 발전사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산업부는 지난 5월 SMP 상한제를 골자로 한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고, 지난달 규제심사위원회에서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SMP 상한제는 지난 정부의 전기요금 통제와 탈원전, 무리한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 등에서 비롯된 한전의 적자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발전사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기요금에 대한 연료비 연동제의 운영도 시장원리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12월 "전기 생산 원가를 연료비 조정단가로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이후 올 2분기까지 연료비 조정단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줄곧 동결돼 왔다.

올해 국제유가와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따른 발전 단가 상승으로 한전은 올 1분기에만 연결기준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정부는 뒤늦게 올 3분기부터 연료비 조정단가를 ㎾h(키로와트시)당 5원 인상했지만 4분기 인상분까지 끌어다 쓴 미봉책에 불과하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유로 정부가 전기요금을 자의적으로 통제하는 연료비 연동제 대신 총괄원가제 등을 통해 시장 원리에 맞게 탄력적으로 요금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물가 상승은 글로벌 정세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려들 것이 아니라 대외적 현실을 인정하고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유류세, 더 내린다고 해결될까…"제도 뜯어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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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활용 중인 '유류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류세 인하만으론 기름값 인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데다 SOC(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에 세수를 활용한다는 과세의 명분도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또 유류세가 휘발유·경유 차량 중심으로 부과되고 있는 만큼 전기차 등 친환경차와의 과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3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유류세 인하폭이 30%에서 37%로 확대 적용됐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일 기준 전국 평균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14.50원 내린 리터(ℓ)당 2130.40원,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9.01원 내린 ℓ당 2158.65원이다. 정부가 예상했던 유류세 인하폭 7%포인트(p) 확대의 효과인 '휘발유 기준 ℓ당 57원, 경유 기준 ℓ당 38원 하락'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법정 인하폭의 최대로 낮췄음에도 평균 기름값은 2100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국회 여·야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등을 개정, 유류세율 조정 가능폭을 50%로 확대해 기름값을 더 낮추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다.

이보다 더 나아가 휘발유 등에 유류세가 붙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제기되고 있다. 당초 유류세가 만들어진 취지를 고려하면 제도가 유지될 필요성 자체가 낮다는 지적이다.

유류세의 탄생 배경을 보면 정부는 '교통세'라는 명칭으로 1994년에 도입, 2003년까지 10년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할 방침이었다. 교통세가 당초 도입된 목적은 도로·도시철도 등 SOC 확충을 위한 재원 마련에 있었다. 이후 2007년부터 교통·환경·에너지세로 명칭을 바꿔 과세 기한을 3년 주기로 연장했다. 지난해 말에도 한 차례로 연장되면서 2024년까지 약 30년 동안 유지되는 셈이다.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도로 등 SOC 투자의 수요가 현저히 줄어든 점을 고려하면 유류세 과세의 뚜렷한 목적은 없어진 상황이다. 실제 유류세는 목적세로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시행규칙에 따라 도로 건설에 절반 가까이를 써야한다. 유류세로 묶이고 있는 교육세에 대해서도 최근 10년 사이 학령인구가 200만명 이상 줄었는 데도 관련 세수만 과도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문제는 정부가 연간 세수 17조원에 달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포기하기에는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걷힌 세수는 16조5984억원으로 전체 국세수입(344조1000억원)의 약 5%다.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 다음으로 큰 비중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유류세를 비롯한 에너지 세제의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최근 보급되고 있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와의 과세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펴낸 '교통·에너지·환경세 일몰 연장의 쟁점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일몰 연장과 함께 검토해야할 점은 수소차·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과세 문제"라며 "우리나라에서 친환경차 확대와 관련해 준비가 미흡하거나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부문은 (친환경차) 보유와 운행 단계의 세제"라고 밝혔다.

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세종=유재희 기자 ryu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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