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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근 '우크라' 전쟁 참전했다는데…'사전죄' 처벌 못한다?[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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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사전죄', 일본 메이지 형법서 유래돼 한국 법에 이식된 법조항…일본서도 '사문화'돼 법정비 논의 대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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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뉴스1) 박세연 기자 = 우크라이나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한 유튜버 이근(38) 전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대위가 2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2.5.27/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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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외국인 의용군인 '국토방위군 국제여단' 소속으로 참전했던 해군 특수전전단(UDT) 대위 출신 유튜버 이근씨는 '여권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올해 3월 출국한 뒤 우크라이나로 이동해 국제여단 소속으로 실제 전투에 참여했던 이씨는 지난 5월말 부상을 이유로 귀국했다. 6월 초 경찰에 출석했던 이씨는 여권법 위반 혐의로만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송치된 상태다.

이씨의 우크라이나 입국 소식이 처음 알려졌던 지난 3월, '사전(私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로스쿨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은 이씨에 대해 사전죄 외에도 '살인죄'나 '폭발물 사용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초기 주장들은 '사전죄'의 의미나 연혁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법조인들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경찰도 '사전죄'로는 이씨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발 취지가 '여권법' 위반으로 돼 있었다곤 하지만, 경찰은 외교부 고발내용 외에도 '사전죄'에 해당되면 수사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사전죄'에 대해선 적용을 하지 않았다.

논란이 됐던 '사전죄 처벌'은 해당 형법 조항이 생긴 연혁을 살펴보면 이근씨 사례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전죄', 일본서 메이지 형법에 넣은 취지…"에도막부 말기처럼 지방정부가 중앙 통제 없이 외국 공격하는 것 막자"


'사전죄'는 한국 형법 제111조 제1항에 "외국에 대하여 사전(私戰)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금고에 처한다"는 식으로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은 일본 형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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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907년 공포 형법 중, 사전죄 관련 조항 제93조 "외국에 대하여 사적으로 전투행위를 할 목적으로 그 예비 또는 음모를 한 자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금고에 처한다. 다만, 자수한 자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돼 있다./메이지대학 출판부



일본 형법 제93조에도 "외국에 대하여 사적으로 전투행위를 할 목적으로 그 예비 또는 음모를 한 자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금고에 처한다. 다만, 자수한 자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돼 있다. 일본 형법에선 범죄 실행의 사전 단계인 '예비죄'와 '음모죄'로만 '사전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원래 일본도 처음엔 '사전죄' 실행에 대해서도 처벌 규정이 있었다. 그러다가 '사인이 외국과 실제로 전쟁단계에 돌입하는 것을 가정하긴 어렵다'는 이유로 '예비·음모'만 처벌규정을 두는 것으로 바꾸었다.

다시 말해 '개인이나 단체가 외국과의 전쟁준비를 하는 것을 막자'는 게 해당 일본 형법 조항의 현재 취지다.

이 조항이 처음 생긴 건 1880년(메이지 13년) 일본 메이지 구형법 공포 당시부터다. '외환(外患)에 관한 죄'의 하나로 존재했다.

그런데 입법이 된 주된 이유가 막부시절 지방 번(藩)이 외국에 전쟁을 건 것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슈번(현재 야마구치현)은 1863년 앞 바다를 지나던 프항스 함대를 공격해 시모노세키 전쟁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집권세력인 에도막부 허락없이 프랑스·영국·미국·네덜란드 연합군과 무력 충돌을 벌인 조슈번은 패배했다. 같은 시기 사쓰마번(현재 가마구치현)에선 영국인 무역상 찰리 리처드슨을 사무라이들이 살해하면서 영국-사쓰마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앙정부인 막부가 아닌 지방정부 번들이 '사전(私戰)'에 나서 곤란해졌던 상황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의 조항이 현대적 체계를 갖춘 메이지 구형법에 반영된 것이다.

형법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 법을, 일본은 독일 법을 많이 참조해 계수했다. 하지만, '사전죄'는 독일에서 온 게 아니다. 독일 형법엔 '외국을 위한 모병죄'는 있지만, 일본과 한국 형법에 있는 '사전죄'에 해당하는 형법 조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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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형법 제109조h '외국을 위한 모병죄'조항/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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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형법 제109조h '외국을 위한 모병죄'조항, 독일형법 원문본/법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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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과의 사전 금지' 조항은 1907년(메이지 40년)에 개정된 현행 일본 형법에서도 제93조에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 형법은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형사령'에 의해 식민통치를 당하던 조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해방 후에도 미군정 기간은 물론이고 1953년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되던 때까지도 의용됐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메이지 형법에서 시작된 '사전죄'는 대한민국 형법에도 그대로 이식됐다. '사문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다보니 '이근 사례'와 같은 해프닝까지 벌어진 상황이다.


일본서도 "개인·단체가 외국 상대 전쟁하는 건 현대에선 불가능…법정비해야"


'사전죄'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일본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사전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막부시절과는 달리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외국 국가에 대상으로 사적 전투를 한다는 개념은 현대에서는 벌어지기 어렵단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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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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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의 한 교수는 "테러전이 아닌 공식 국가의 정식 편제 군대에 소속돼 참여하는 한국인을 '사전죄'로 처벌한다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사전죄 처벌을 얘기하다보면 프랑스 외인부대 복무 한국인이나 미군서 시민권 취득을 위해 복무하는 이들에 대한 법적 처벌여부도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문화된 '사전죄' 조항을 들먹이다보니 이근씨 참전에 대해 새삼 논란이 됐을 뿐, 사전죄 적용 가능성은 원래 거의 없었다"며 "처벌을 하려면 '사전'의 개념부터 제대로 봐야 하는데 법 취지상 '사전'은 '타국간의 전쟁'에 한국인이 개인적으로 참전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 개인이나 집단이 외국 국가를 상대로 한국 정부 뜻에 반해 전쟁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사전(私戰)'의 연혁적 의미…'타국간 전쟁에 개인 참전(參戰)'이 아니라 '개인이 정부 뜻에 반해 상대국에 대해 개전(開戰)'하는 것에 가까워


"이씨의 참전은 '사전죄' 제정시에 상정해 놓은 '사전'의 개념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는 해석이다. 외국 간의 전쟁에 개인이 PMC(Private Military Company;민간군사기업) 등에 속해 '직업적 용병'으로 참여하거나 '의용군' 성격의 정규 편제 군대에 합류한 것을 형법상 '사전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단 것이다.

이 교수는 "법전문가라도 사문화된 사전죄에 대해선 배우지도 않고 해서 잘 모를 수 있는데 '사전'의 의미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사전'의 의미로 해석을 내놓으니 '이근에 대해 사전죄를 적용해야한다'느니 하는 이상한 설명이 나돈 것"이라며 "이씨를 사전죄로 처벌하게 되면 실제 교전에 참여한 프랑스 외인부대나 미군 소속 한국인들도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인이 더 이상 의용군으로 참전하지 않도록 말리려는 의도에서 '사전죄'운운했다면 당시 상황논리론 이해는 되지만 정식 편제된 우크라이나 군에 소속돼 참전한 이근씨 사례는 어떻게 살펴봐도 사전죄로는 처벌될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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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합류한 이근 전 대위와 관련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여권에 대한 행정제재를 진행 중이라며 향후 여권법 위반 관련 형사 고발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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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ISIS 가입 '김군' 사례와 이근 사건은 전혀 달라…테러집단 가입 전투원에 대해선 '유엔'차원서 이미 2014년 제재 결의

이근씨에 대한 '사전죄' 적용 논란 과정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ISIS에 가입해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한 뒤 실종된 '김군' 사례가 유사한 것처럼 설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군과 이근씨 사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김군은 한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대부분이 '테러집단'으로 여기고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던 ISIS 전투원으로 참여하기 위해 출국했다. ISIS에 대한 미군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전투는 '대테러전'이었다. 반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국가간 정규전이다.

현대적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은 2014년 '외국인 전투원'이 테러단체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를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했다. 당시 ISIS 등 이슬람 테러단체에 서구권 국가 출신 외국인 테러 전투원들이 대거 가입해 활동하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결의안은 197개 유엔 회원국에 구속력이 있다. 한국도 외국인 테러 전투원 방지 장치를 법으로 만들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안보리에 참석해 "대한민국은 엄격한 법 집행과 효과적인 자금출처 차단 등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에서 '테러방지법' 입법시 일부 조항에 그 취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테러방지법 제13조에는 "관계기관의 장은 외국인테러전투원으로 출국하려 한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내국인·외국인에 대하여 일시 출국금지를 법무부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등 외국인 테러 전투원을 막기 위한 국내법적 규제가 들어가 있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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