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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산유국 리비아 “정전이 웬말”…‘한지붕 두 정부’ 반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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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리비아 서부 도시 트리폴리 순교자광장에서 1일(현지시간) 잦은 정전과 고물가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트리폴리|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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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주요 산유국 리비아에서 잦은 정전, 생활고에 분노한 주민들이 전역에서 주요 관공서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시위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내전으로 인해 둘로 쪼개진 동·서 정부가 경제 문제 해결은 미루고 권력다툼에만 골몰하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해석된다.

현지매체 알와사트 등의 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일부 시위대는 지난 1일 리비아 동부 군벌 중심도시인 토브룩에 있는 의회를 습격해 사무실을 뒤지고 건물 일부를 태웠다. ‘아랍의 봄’ 발원지인 동부 주요 도시 벵가지, 옛 수도이자 서부 정부 기반 도시인 트리폴리에서는 주민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우리는 전등이 작동하기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제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리비아 북서부에 위치한 제3 도시 미스라타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시청 건물에 불을 지른 후 도로를 막았다. 사하라 사막 깊숙한 지역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 세바에서도 관공서 방화가 벌어지는 등 전역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일부 지역 시위대는 과거 축출된 카다피 정권을 상징하는 녹색 깃발까지 나부끼면서 관공서에서 훔친 문서들을 흩뿌렸다. 리비아는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이 집권한 서부 트리폴리 통합정부(GNU)와 세속주의 군벌을 지지하는 동부 토부르크 신의회(HoR)로 양분돼 있는데, 양 집권 세력 모두에게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리비아 주민들은 최근 연료 부족과 하루 최대 18시간에 이르는 정전을 견디고 있다. 리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2020년 추산 기준 원유매장량 484억 배럴로 세계 9위, 아프리카에서는 1위에 오를 정도로 자원 부국이지만 극한 대립 중인 동·서 각 진영 민병대가 무기 구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원유를 밀매하면서 연료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전문가들은 리비아는 거의 모든 식량을 수입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소비자 물가 고공행진 영향까지 겹치면서 올해 더욱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시위는 통합정부 구성을 위해 새 헌법을 제정하고, 대선·총선 일정을 정하기 위해 유엔 중재로 지난달 30일 열린 제네바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이후에 벌어졌다. 정치권이 민생문제 해결은 외면한 채 권력다툼에만 골몰하는 것에 대한 경고로 해석된다.

스테파니 윌리엄스 유엔 리비아 특사는 “미래 대통령·의회·정부의 역할과 권한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전했다. 특히 대선 후보 자격 요건에 대한 의견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던 대선과 총선이 어그러졌던 이유도 후보 자격 요건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앞서 동부 군벌 사령관인 칼리파 하프타르와 압둘 하미드 모하메드 드베이바 GNU 임시 총리는 물론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까지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제네바 협상이 결렬되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리비아가 다시 내전으로 내몰리고 영구적으로 영토가 분할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제네바 협상 이전부터 동·서 진영 간 대립은 격화 양상을 보였다. HoR은 지난 3월 GNU 임기 종료를 주장하며 북부 도시 시르테에 기반을 둔 신내각(GNS)을 승인하고, 파티 바샤가 전 내무장관을 새 임시 총리로 지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유엔 주도 아래 각 정파 지도자들에 의해 선출된 드베이바 임시 총리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에만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며 버티면서 트리폴리에서는 동·서 진영 지지 무장세력 간 충돌이 잇따랐다. 유전지대가 많은 동부를 기반으로 하는 HoR 지지 민병대는 드베이바 임시 총리에게 바샤가 전 장관으로 권력 이양을 압박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주요 유정을 폐쇄하고 있다.

호세 사바델 유럽연합(EU) 리비아 특사는 “이번 시위는 리비아 국민이 선거를 통한 변화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도 “리비아의 취약한 상황을 감안할 때 특별한 자제가 필요하다”며 평화시위를 촉구했다. 리비아는 2014년부터 동·서 양 진영 간 내전이 벌어졌고 2020년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1000명 넘는 민간인이 숨졌다. 윌리엄스 유엔 리비아 특사도 “폭동과 공공기물 파괴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자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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