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대중가요의 아리랑] <1> 대중가요의 개화(開花) '희망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1920년대 유성기 음반으로 나온 ‘희망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고전으로 통한다. 국내 최초의 유행가인 셈이다. 하지만 순수 창작곡이 아닌 번안곡이다. 선율은 바다 건너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사위지 않는 절절한 노랫말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싹텄다. ‘희망가’는 여전히 한국인의 애창곡인 것이다. 그것은 2020년 2월 TV조선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서도 입증이 되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워줬던 할아버지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직후 열세살 소년의 목청을 타고 흘러나온 ‘희망가’. 서러움에 젖은 소년의 천진한 가락에 더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나이 지긋한 시청자들이었다. 최초의 대중가요는 그렇게 21세기에 선연하게 부활한 것이다. ‘희망가’는 미스터 트롯의 인기스타 정동원, 이찬원, 김호중, 고재근이 연출한 감성의 무대로 다시 인기를 모았다.

‘희망가’는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과 정치적 혼란의 와중이어서 울림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희망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대중가요란 그런 것이다. ‘희망가’가 처음 유행하던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다. 일부 현실 도피성 가사 때문에 ‘절망가’ ‘실망가’로도 불렀지만, 3·1운동의 좌절로 실의와 회한에 잠긴 망국의 민중에게 ‘희망가’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희망의 끈을 놓지 말 것을 촉구했다.

‘희망가’는 바다를 두 번씩이나 건너온 외국곡이다. 미국의 흑인들이 부르던 찬송가가 일본 열도에 와서 진혼곡으로 바뀌었는데 이 가락에 다시 한반도로 건너오면서 누군가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처음에는 두 민요가수의 무반주 병창으로 발표되었고 제목 또한 여러 가지였다. 1920년대 악보집과 음반에서는 가사의 첫 부분을 인용한 ‘이 풍진 세월’ ‘이 풍진 세상’ 등으로 통용되었다.

‘희망가’라는 제목은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가수로 꼽히는 채규엽이 취입한 노래를 통해 등장했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산물이다. 3·1 운동이 실패한 후 민중의 허탈감을 달래기 위해 ‘희망가’는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사에 담긴 허무의식은 일제강점기 조선을 지배한 암울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첫 구절의 ‘풍진(風塵)’이란 단어 또한 바람이 일어 흙먼지 가득한 상황을 일컫는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풍진인가. ‘희망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숱한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시대 분위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를 거듭했다. 민요가수에서 고복수·신카나리아 등 원로 트로트 가수, 한대수·송창식·이연실·전인권 등 당대의 청년가수, 조영남·장사익·노사연·이선희·안치환 그리고 팝페라 테너 임형주의 개성 있는 목소리에서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과 대금 명인 이생강의 연주까지….

‘희망가’는 영화 ‘군함도’의 마지막 장면과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이별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또다시 ‘희망가’를 불러야 하는 것은 노래의 제목과 내용처럼 역설인가. 속절없이 세월이 흐르는 것 자체가 어쩌면 희망일 수도 있겠다. 곡절 많은 세상 저마다의 아픔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가’의 가락이 새삼 묻는다. 이 풍진 세상에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고….

ⓒ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