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美 첫 흑인 여성 대법관 무척 바쁠 것… 소수 의견 쓰느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떠들썩한 언론 스포트라이트 속에 취임했지만

‘보수 6 대 진보 3’ 구도 속 존재감 발휘 힘들어

"급진우파 폭주 막으며 어떻게든 목소리 내야"

세계일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미국 새 연방대법관(왼쪽)이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남편(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오른쪽)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은 한동안 무척 바쁠 것이다, 소수의견 쓰느라.”

미 시사주간지 ‘더뉴요커’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은 물론 세계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취임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의 앞날에 관해 내놓은 전망이다. 잭슨 대법관 개인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굳어진 연방대법원의 보수 절대우위 구도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3일 더뉴요커 홈페이지에는 ‘잭슨 대법관은 급진우파(Radical-Right) 대법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미 사법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라며 떠들썩했던 언론의 조명은 잠시일 뿐 그가 대법원에서 도무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잭슨 대법관은 1994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스티븐 브라이어 전 대법관 후임으로 대법원에 입성했다. 미국에서 대법관은 종신직이지만 브라이어는 84세의 고령이란 점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은퇴했다. 진보 성향이 뚜렷한 브라이어로선 클린턴과 같은 민주당 소속인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안에 물러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로써 브라이어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임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까지 3명의 대법관으로 짜여졌던 대법원의 진보 진영은 이제 소토마요르, 케이건, 잭슨 3인 체제로 개편됐다. 문제는 구성원에는 변동이 있으나 ‘3’이란 숫자는 그대로라는 점이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9명인 대법원에서 이들 3명을 뺀 6명은 여전히 확보한 보수 진영이란 얘기다.

세계일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미국 새 연방대법관(왼쪽)이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존 로버츠 대법원장(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취임 선서문에 서명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이 쟁점인 사건에서 대법관 5 대 4 의견으로 “낙태권은 헌법상 권리가 아니며, 따라서 연방을 구성하는 50개주(州)는 저마다 낙태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보수 성향의 공화당 주지사가 이끄는 주들부터 시작해 종국에는 미 전역에서 낙태가 사실상 금지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더뉴요커에 따르면 6명의 보수 진영 중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혼자 반대표를 던졌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여성의 낙태권을 폭넓게 보장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깨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낀 결과로 풀이됐다. 대법원장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보수 대법관 5명은 눈 하나 까닥 하지 않고 일치단결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어 버렸다. 보수 대 진보가 5 대 4였을 때만 해도 로버츠 대법원장 같은 중도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사안에 따라 진보 쪽에 가담하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는데, 지금처럼 6 대 3의 구도 아래에선 보수 대법관 5명만 똘똘 뭉치면 모든 판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도가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더뉴요커는 앞으로도 보수 대 진보, 또는 공화당 대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들이 줄줄이 대법원 심리를 받을 예정이고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잭슨 대법관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기사는 “어쨌든 잭슨은 소토마요르, 케이건 두 선배 대법관과 힘을 합쳐 대법원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길밖에 없다”며 “보수 대법관들의 ‘폭주’는 역으로 세 대법관이 향후 몇 년 동안 무척 바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일단은 소수의견을 통해서라도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여론의 환기를 노릴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얘기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