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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여야 '태풍의 핵' 李·李…진짜 갈등은 시작도 안했다 [스페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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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REPORT : 與도 野도 권력투쟁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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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선 경쟁자와 정적이 존재한다. 경쟁자는 밖에 있다. 나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한 자다. 여당의 대선후보에겐 야당의 대선후보가, 정당의 대표에겐 다른 정당의 대표가 경쟁자다. 경쟁자들은 서로 앞서기 위해 싸우지만 기본 원칙은 공존이다. 상대가 있어야 나도 존재 가치가 있다. 반면에 정적은 내부에 있다. 같은 정당이나 진영에 속해 있기에 큰 틀의 목표와 생각이 같다. 예컨대 정권교체,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등 목표를 공유한다. 하지만 목표까지 가는 방법에선 딴판이다. 그렇다 보니 공존이 어렵다. 서로를 배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싸움이 더 치열하고 난폭하다. 정권이 교체돼 새 정부가 출범했다. 국정·정치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선거를 통해 권력을 보장받았다. 지지율이 오르내리고 임기 초·중·후반 상황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위상엔 큰 변화가 없다. 일종의 상수다. 이와 달리 여야 정치인들에겐 변수가 잔뜩 붙어 있다. 상황에 따라 그들의 미래가 확확 달라진다.

요즘 변수들이 잔뜩 붙어 있는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이준석과 이재명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다. 지난해와 올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행적을 요약하면 이렇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준석 대표는 20대 청년들의 관심을 끌어내면서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여세를 몰아 6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해 헌정사상 최연소 제1야당 대표(36세)가 됐다. 이 시기를 전후로 2030세대 당원이 대폭 늘었다. 올해에는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이재명 의원은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한 해 전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을 받아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위기에서 기사회생했고, 지난해 경선 즈음에는 '대장동 이슈'가 발목을 잡았지만 이를 뿌리치고 대선후보에 올랐다. 지난 3월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고 6월 지방선거에선 총괄선대위원장이 돼 뛰었지만 당은 참패했다. 그러나 같이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다. 두 번의 큰 선거에서 이긴 정당의 대표인 이준석은 궁지에 몰리면서 대표 자리까지 위협받고 있고, 이 두 번의 선거에서 진 이재명은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열리면서 '빠른 재기'를 모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과 이재명은 정적과 마주하고 있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점점 깊은 내홍에 빠져들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준석, 배제되고 고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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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윤(친윤석열)'으로 꼽히는 배현진 최고위원과의 악수를 거부한 일, 윤 대통령의 첫 해외 출국길 환송에 이 대표가 나가지 않은 일, 이 대표가 만든 혁신위원회 첫 회의 날에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대표를 맡은 혁신 모임 행사가 열렸고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면담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진 일, 친윤으로 분류되는 박성민 당 대표 비서실장이 전격 사임한 일 등. 이 대표가 배제되고 있고 고립된 분위기가 확연하다.

이런 모습의 이면에는 권력투쟁이 있다. 당장은 누가 당을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지, 멀게는 차기 총선에서 어떤 인물을 공천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갈등이다. 이 대표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당 체계를 완전히 개편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외쳤다.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차기 총선의 공천 개혁을 다룰 예정이다. 그는 2년 뒤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승리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호남에서도 의석을 확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려면 지금 국민의힘의 인적 구성으론 한계가 있고 젊은 세대가 대거 당과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7일 MBN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친윤계 생각이 다르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게 같으면 나라 큰일 난다. 나라 걱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윤계에 대한 비판이자 당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길을 막고 있는 인물을 '간장'이라고 표현했다. 정치권에서는 안철수·장제원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고 이 대표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대남(20대 남성)의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대선 때도 지선 때도 확인됐다. 정치권의 금기로 통하는 내용을 거침없이 주장하고 뚜렷한 생각을 밝힌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대선 당시 세대포위(고령층 표에 2030세대의 표를 더해 민주당 지지층인 4050세대를 포위한다) 전략, 극우 성향 유튜버들과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에 대한 비판 등이다.

반면 국민의힘 안엔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이 존재한다. 그의 직설적인 태도에 기존 보수 지지층과 당내 중진 의원들이 불편해한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서는 이 대표의 역할에 동의했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보인 두 차례의 '가출'이 결정적이었다. 대선 선대위 운영 과정에서 불만을 제기하며 두 차례 당 대표 업무를 보이콧했다. 당시 후보인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설득해 업무에 복귀하긴 했지만 앙금을 남겼다. 특히 친윤계는 이 대표에 대한 불편함과 불신이 싹튼 듯하다.

대선 때부터 싹튼 李·친윤의 투쟁


이 대표가 공천 개혁 문제를 다룰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자 누적된 불만이 터졌고 이것이 최근의 모습이다. 차기 총선에서 윤 대통령을 적극 지원할 인사들을 공천하고 싶은 친윤과 당의 독립성을 뒷받침할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길 바라는 이 대표 간의 대립은 어찌 보면 예고된 셈이다.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보좌했던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대놓고 배척하지는 않지만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이를 잘 알고 있는 친윤들이 이 대표 견제에 나선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갈등 속에 당 윤리위원회가 이 대표의 징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성 상납 무마 의혹'이다. 한 차례 미뤄진 끝에 오는 7일 윤리위가 결정할 예정인데, 징계 수위에 따라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의혹 자체를 강력히 부인한다. 경징계인 경고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태세다. 또 이 대표 측은 수사가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징계를 논의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징계 결정이 나온다면 친윤을 중심으로 당 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주장이 나올 것이고, 이 대표는 강력히 저항할 것이다. 저항의 힘은 청년층 당원의 지지로부터 온다. 이들은 경고를 '탄압'으로 인식하고 국민의힘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징계 조치가 없더라도 이미 이 대표와 친윤의 불신과 대립은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니 당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불신까지 싹튼 상황에서 갈등은 이제 1라운드일 뿐이다. 2년 뒤 총선 때까지 한쪽이 사그라들지 않는 2라운드가 이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차기 당권을 꿈꾸는 안철수 의원과 이 대표는 또 다른 갈등의 지점이다.

뿌리 깊은 이재명·친문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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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내홍은 이재명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표면상으론 선거 패배 책임이 가장 큰 자가 곧바로 다시 나서는 게 말이 되느냐는 친문(친문재인)·비명(비이재명)과 패배 책임은 모두에게 있고 이 의원만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친명(친이재명) 간의 갈등이다. 그러나 더 깊게 보면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파 간 권력투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투쟁은 이미 예정된 것이다. 대선 때야 이 의원이 후보니까 수면에 가라앉아 있었고, 지방선거 때는 상황이 급하니까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갈등의 뿌리는 꽤 깊다.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의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몰아세웠다. 친문과 그 지지자들에겐 강렬하고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민주당 주류인 친문이나 86그룹은 자신들과는 결이 다른 행로를 거친 이 의원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는데, 2017년을 기점으로 의구심은 불신으로 바뀌었다. 2018년 이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친명은 주류 세력에 불만을 갖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후보인 이 의원을 제대로 돕지 않았다는 거다. 후보만 보이고 의원들이 지원에 소극적이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8월 말 전당대회가 열린다. 당 대표 등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을 넘어 차기 총선에서 어느 계파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재명으론 안 된다'와 '이재명만이 할 수 있다'가 맞선다.

주류인 친문은 차기 총선 이후에도 현재 위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구심점이 없지만 총선 이후 새로운 대선 주자를 물색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97그룹(90년대 학번 70년대생) 등 비명은 새로운 리더십의 주역이 되고 싶어한다. 이들은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말에도 40%를 웃돌 정도였는데도 대선에 졌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의원이 지방선거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당은 참패하고 본인만 생존했다는 점도 문제 삼는다. 이 의원의 정치적 경쟁력이 이미 판명 났다는 거다. 게다가 이 의원을 향한 다갈래의 수사가 진행 중인데, 당 대표가 될 경우 이 의원에 한정되지 않고 당 자체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선거 패배 이유 놓고도 다른 생각


반면 친명은 당을 개혁하고 이끌어갈 인물이 이재명 의원 말고 누가 있느냐고 본다. 대안 부재론이다. 또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는 모두의 책임이지 특정인에게 한정 지을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문재인정부의 갖가지 정책 실패와 잘못으로 대선판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0.73%포인트의 석패를 한 것이나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자리를 지켜낸 것도 이 의원이 나섰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이 의원을 강력히 지지하는 '개딸' 당원들과 친문 의원들 간에 불편한 관계가 형성됐다.

또 친명은 이 의원이 당의 가장 큰 자산이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창당 수준의 재건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 재건은 곧 인적 쇄신을 의미하고, 차기 총선에서 이 의원의 대선 재도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인물들이 대거 국회로 들어오는 그림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엔 그동안 비주류로서의 한계, 대선 당시 의원들의 소극적인 모습에 대한 실망 등이 있다.

97그룹의 당권 도전이 잇따르고 있지만 당 안팎에선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분위기가 있다. 친문으로서는 현실적인 타협을 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 공천과 당직 임명에서 당 대표의 권한을 축소하고 다른 최고위원들의 영향력을 키우는 거다. 당헌·당규를 바꾸거나 동등 권한을 보장하는 집단지도체제를 말한다. 지금보다야 힘이 빠지겠지만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거다. 물론 친명계는 반대한다. 그러면서 3월 대선 이후 이 의원을 지지하며 당원이 된 '개딸'들에게도 전당대회 투표권(지금은 입당 후 6개월 기간이 필요)을 주길 바란다.

따라서 8월 전당대회까지는 타협안을 놓고 갈등이, 그 이후에는 총선까지 당의 인적 쇄신과 총선 공천을 놓고 극한의 대립이 예정돼 있다. 이제 1라운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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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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