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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남들 출근시킬 때 해외 원격근무 확대한 라인플러스, 비결은 '디테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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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시차 4시간 해외서 근무 허용
원격근무 도입 위해 임직원 근무 환경 구축 지원
의사소통 강조, 업무 성과 점검 시스템 마련
"실제 생산성 문제 없어" 2.0으로 제도 확대 결정
한국일보

라인플러스 직원은 7월부터 서울과 시차 4시간 지역의 해외 어느 곳에서나 일할 수 있게 됐다. 라인플러스 직원이 휴양지에서 근무하는 모습. 라인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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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매달 17만 원, ②1인당 2대의 PC와 모니터, ③'의자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허먼밀러 의자에 ④각자 방에 붙일 수 있는 '방해금지' 팻말까지. 라인플러스가 원격근무하는 임직원을 위해 제공하는 복지 내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엔데믹(풍토병화) 단계를 맞이하면서 주요 정보통신(IT) 기업들이 사무실 출근 근무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인플러스는 오히려 원격근무 범위를 한국과 시차 4시간 지역의 해외로 확대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라인플러스 직원들은 당장 이달부터 괌, 몰디브에서 최대 90일 동안 일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IT업계 경쟁사 경영진은 시샘을, 해당 기업 직원들은 부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선 라인이라는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는 라인플러스만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 분당구 라인플러스 사옥에서 만난 주정환 라인플러스 HR 총괄은 "경영진의 의지만 있다면 다른 IT업체들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근무 방식"이라고 힘줘 말했다.

92% 주 2회 이하 출근...넓은 사무실에 텅 빈 책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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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기준 라인플러스 직원의 92%는 주 2회 이하 출근을 하고 있다. 6월 28일 찾은 라인플러스 사옥에서는 빈 자리만 찾아볼 수 있었다. 라인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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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플러스는 지난해 7월 완전 재택근무를 하거나 사무실근무와 재택근무를 혼합해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워크 1.0'을 도입했다. 1년 동안 운영한 결과 올 7월부터는 재택근무지를 괌, 몰디브 등 시차 4시간 이내 해외까지 확대한 '하이브리드 워크 2.0'을 시행하기로 했다.

실제 이날 라인플러스 사옥에서는 임직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넓은 사무실 공간에 텅 비어있는 책상만 볼 수 있었다. 라인플러스에 따르면 4월 기준 전체 임직원의 92%가 주 2회 이하 사무실 출근을 하고 있으며, 53%는 완전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주 총괄은 "다른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택했고 머지않아 다시 출근근무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반면 우리는 처음부터 계속 원격근무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에 업무 생산성과 커뮤니케이션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며 "원격근무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만큼 전격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보이지 않으면 놀 것"이라는 인식 깨기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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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환 라인플러스 HR 총괄. 라인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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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플러스는 일본을 제외한 한국, 동남아 등 글로벌 라인 서비스의 운영 개발을 담당하는 만큼 수십 개 나라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에 다른 회사와 비교해 코로나19 이전에도 화상회의 등 원격근무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상황이었다. 펜데믹을 겪으며 보다 수월하게 원격근무가 자리를 잡은 셈이다.

회사의 세심한 배려도 있었다. 원격근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라인플러스는 카페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장소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대신 재택 공간을 사무실처럼 꾸밀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했다.

'보이지 않으면 논다'는 인식 개선을 위한 시스템도 마련했다. 게임 업계를 비롯해 상당수 기업들이 거리두기 정책이 풀리자마자 출근근무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임직원들이 진짜 일을 하고 있는지, 침대에 누워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주요 IT 기업들은 임직원의 반발에 못 이겨 원격근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도 특정 시간에 집중 근무하도록 하는 '코어타임제'를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카카오는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직원들이 음성 채널에 실시간으로 연결되도록 지시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아 공개 사과한 뒤 번복하기도 했다.

반면 라인플러스는 ①동료 평가 항목에 원격근무를 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했는지를 추가해 임직원 스스로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 또 ②상시 성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이 수시로 자신의 업무 성과를 입력하고, 이를 조직장이 피드백하는 문화도 만들었다. 옆구리를 슬쩍 찔러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 효과'를 노린 셈이다.

이와 함께 ③원격근무 도입 전 조직장들을 대상으로 원격근무 상황에서 어떻게 팀원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지 교육도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원격근무를 하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주 총괄은 "원격근무를 하고 있는 임직원과 그 조직장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설문 조사를 했는데, 대다수가 생산성과 속도, 퀄리티가 이전과 비교해 동일하다고 답했다"며 "이번 원격근무를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개발자 지원 30% 증가...고향에 내려간 임직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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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플러스의 엔지니어인 이선로씨는 지난해 5월부터 한 달간 제주에서 근무했다. 라인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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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도입이 회사에겐 어떤 이득이 있을까. 라인플러스는 원격근무를 확대했지만 사옥의 공간 규모를 축소할 계획은 없다. 다만 인재 쟁탈전을 벌이는 IT업계에서 개발자 이탈을 막고, 능력 있는 외부 개발자를 유인하는 라인플러스만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주 총괄은 "지난해 코로나19 이후에도 원격근무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하자 한 직원은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아예 내려갔다"며 "매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수도권 대신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도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한 개발자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라인플러스 입사 지원자 수도 지난해 대비 30%나 증가했다. 라인플러스 퇴사자 중 원격근무 확대 때문에 재입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주 총괄은 설명했다.

이와 함께 라인플러스는 대면근무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대부분의 업무가 원격근무로 진행되지만, 여전히 대면근무가 필요한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라인플러스는 팀별로 정기적인 출근일을 정해 대면회의를 하도록 한다거나, 처음 합류한 직원을 위해 오프라인 미팅을 제안하는 등 상황별 룰을 설정했다. 이런 세세한 룰 덕분에 부서장에 따라 특정 부서에서는 임직원들이 전면 출근을 한다거나, 재택근무만을 주장해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주 총괄은 여전히 근무 방식을 두고 혼란을 겪고 있는 IT업계에 이런 조언을 했다. "직원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율성을 주고 성과 중심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마련하면 어디서든 보다 유연한 근무 제도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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