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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쪼그라든 치킨·핫도그, '꼼수' 가격인상에 소비자들은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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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슈링크플레이션' 기승
가격은 그대로, 상품 크기·중량 줄여
"미국 곽티슈 화장지 65장→60장 줄여"
"초콜릿 용량 11% 줄이고 '포장 혁신' 미화"
"국내선 공기 빵빵한 '질소과자' 논란에
대학생들 '과자뗏목' 만들어 한강 건너기도"
"꼼수 들통나면 신뢰도·이미지 훼손
적절한 제재·소비자 보호 수단 필요" 지적
한국일보

13일 서울 중구 명동 음식점 거리에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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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요즘 치킨시키면 괘씸하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글쓴이는 순살 치킨에 감자튀김과 떡튀김도 섞여 있는 사진과 함께 "양 적은 것 감추려고 하는 행동 같다"고 적었습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순살 치킨의 일부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감자와 떡으로 채운 것 아니냐고 의심한 것이죠.

해당 게시물에는 공감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요. 특히 한 누리꾼은 "순살 자주 먹는 곳이 있는데 최근에 다이어트한 닭을 쓰는지 양이 점점 줄어든다"며 "자주 먹으니 양을 모를 리가 없는데 2마리가 1.8마리쯤 되더니 지금은 1.5마리 수준이 됐다"고 자신의 경험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저번 주 시켰을 때 '대실망'하고 모아둔 쿠폰이나 쓰고 다른 곳 찾아봐야겠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른 누리꾼들도 "치킨 먹으려고 시켰는데 뭔 떡이 있어?" "떡 넣는 건 진짜 좀 그렇네"라며 동조했는데요. 그중에는 "문제는 저거 먹으면 배가 부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어가게 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댓글도 눈에 띄더군요.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많이 보이는데요.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 겪은 적 없으신가요? 요즘 하도 물가가 많이 오르니까 쉽사리 가격을 올리지는 못하고 대신 이렇게 제품의 양을 줄이기도 하죠. 우회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변칙' 또는 '꼼수' 인상입니다.

"가격 인상하면 소비 줄 수 있어... 대신 용량 줄여"

한국일보

치킨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감자튀김과 떡튀김 등이 듬뿍 담겨있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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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에는 이런 민원도 있었다고 해요. 한 소비자가 2021년 8월 온라인쇼핑몰에서 75g인 핫도그 여러 개를 한 묶음으로 1만3,900원에 구매했는데, 배송된 제품의 중량을 실제로 측정해봤더니 70g이었던 겁니다. 그는 해당 판매처에다 문의해서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는데도 그해 11월까지 여전히 중량을 75g으로 판매했고, 그래서 보상을 요구했다고 해요. 잘 해결되지 않았는지, 결국 소비자원에 신고했던 것이죠.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원래 75g이었던 제품 용량을 줄인 건지, 아니면 부풀려서 표기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돈을 내고도 5g이 적은 핫도그를 구매했으니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처럼 가격은 그대로 놔둔 채 제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거두는 전략을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고 합니다. '줄어든다'는 뜻의 영어 단어인 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입니다. 재료나 원자재 값이 부쩍 뛰어올라 요즘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을 인상하는 사례가 많은데, 가격을 올리면 소비가 줄어들 수도 있어 이런 '요상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죠.

"애플, 스마트폰 충전기·이어폰 안 주고 8조 원 절감"

한국일보

미국 클리넥스가 판매하는 곽티슈는 최근 화장지 용량이 65장(왼쪽)에서 60장(오른쪽)으로 줄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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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고물가 현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면서 유사한 사례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월마트가 판매하는 두루마리형 페이퍼타월은 한 롤(roll)에 타월 168장이었던 것이 120장으로 30%가 줄었지만, 가격은 12롤에 14.97달러 그대로입니다.

미국의 화장지 제조업체인 클리넥스가 생산하는 뽑아쓰는 티슈 소형 한 팩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65장의 티슈가 담겨 있었는데, 지금은 60장으로 줄었습니다. 영국의 네슬레는 네스카페 아메리카노 커피 캡슐 용량을 100g에서 90g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허쉬초콜릿은 '키세스 초콜릿'의 정가를 그대로 유지한 채 18온스(1온스는 28.35g)였던 제품 무게를 2온스(11%) 줄이고는 이를 포장 혁신으로 미화했다고 합니다.

아이폰으로 유명한 미국의 애플사는 아이폰을 구매하면 당연히 구성품에 포함됐던 충전기와 이어폰을, 2020년부터는 '환경 보호'를 이유로 구성에서 아예 제외하기도 했죠. 이 역시 꼼수 '슈링크플레이션'입니다. 애플은 충전기를 기본 구성품에서 제외한 지난 2년 동안 약 8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했다는 외신 분석도 나왔었죠.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도 덩달아 지난해 갤럭시S21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충전기를 제외해 소비자들의 원망을 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중저가 제품군인 A시리즈와 화면이 접히는 폴더블폰 Z시리즈도 기본 구성품에서 충전기를 제외하는 등 점차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이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하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봉지를 뜯었더니 내용물은 조금밖에 없는 '질소과자' 아시죠? '슈링크플레이션' 꼼수의 대표 사례인 질소과자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게 바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환율이 치솟아 원자재 값을 감당하기 어렵자, 제과업계는 과자 대신 질소를 넣어 부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가를 낮춰 가격을 유지했죠. 과자의 양은 줄었지만 같은 값에 팔았기 때문에 판매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기업의 꼼수에 소비자는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유통시장에서 소비자는 기업이 설정한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격 수용자이기 때문이죠.

질소과자에 뿔난 대학생, 과자 타고 둥둥 한강 건너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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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소비자들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2014년 9월 용감한 대학생 3명이 제과업체의 과대 포장에 항의하기 위해 질소과자로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이색 행사를 열었죠.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이들은 감자칩 등 질소충전재가 많이 들어 있는 과자 160여 개(18만 원어치)를 구매해, 서울 송파구 한강공원 수상관광 승강장 앞에서 1시간여 만에 테이프로 과자 봉지들을 둘둘 감아 길이 2m, 폭 80cm짜리 소형 뗏목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2명이 뗏목에 올라타 노를 저어 30분 만에 건너편인 광진구 서울윈드서핑장에 도착했죠. 60, 70㎏ 정도인 성인 남성 2명을 가뿐히 띄울 정도로 봉지에는 과자 대신 기체(질소)가 빵빵하게 차 있었던 셈이죠. 한강을 건넌 뒤 이들은 "과자 봉지 보트로도 횡단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다"며 "제과업체들이 소비자를 더 배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질소과자 논란이 확산하면서 같은 해 12월에는 국산과자 원가 비율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제품별 가격 원가 자료에 따르면 오리온 초코파이(420g)는 원가 비율이 43.7%였습니다. 제과업체가 절반 이상을 마진으로 남긴다는 얘깁니다. 초코파이의 원가 비율은 2012년(59.7%)부터 계속 낮아졌다고 해요.

농심 새우깡(90g)은 원가율이 73.5%, 해태제과에서는 맛동산(325g) 64.4%, 홈런볼(46g) 64.6%, 에이스(364g) 71.2%였다고 해요. 롯데는 빼빼로(52g)의 원가율이 95.5%, 카스타드(138g)의 원가율은 97.2%라고 적어 내 제출 자료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었죠.

"소비자는 속수무책... 적절한 제재 수단 필요"

한국일보

고물가로 고통받았던 2011년 유통업계의 각종 꼼수 가격 인상을 지적한 보도. 한국일보 2011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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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질소과자 논란과 원가율 자료에 뜨끔했는지 이듬해 11월 오리온은 '초코파이 정(情)'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양만 11.4% 늘리는 등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갑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을 추적해온 소비자운동가 에드거 도스키는 AP통신에 "인플레이션 때문에 슈링크플레이션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는 민감하지만 내용물의 변화는 잘 눈치채지 못하는 점을 기업들이 이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비자라면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네요.

또 꼼수를 쓰는 기업을 견제하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제재 수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내 유통업계 관계자는 "워낙 물가가 많이 올랐다면, 그리고 적정한 수준의 가격 인상은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며 "굳이 꼼수를 썼다가 들통나면 오히려 신뢰도 하락과 이미지 손상 등 부수적인 피해가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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