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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는 속담,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젠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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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무능력한 아버지의 그늘에도...재능은 꽃 폈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 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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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 속 조의 모습(왼쪽 사진). 조는 '작은 아씨들'의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분신이다. 오른쪽은 1940년에 나온 미국 기념 우표 속에 그려진 루이자 메이 올컷의 모습. 소니픽처스 제공, 위키피디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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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라는 속담이 있다. 곧게 잘 자란 소나무는 궁궐 건축 등에 귀하게 쓰이기 때문에 한양으로 보내지는데, 구불구불하고 볼품없게 자란 소나무는 가치가 없어서 그 자리에 남아 선산을 지키는 나무가 되기에 생긴 말이다. 큰일 하느라 바쁜 잘난 자식 대신 못난 자식이 부모 곁에서 봉양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 아들이 아니라고 차별받거나 못났다고 구박받으며 자란 여성들 생각이 난다.

'작은 아씨들'로 가족 먹여 살린 루이자


소설 '작은 아씨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다고 불평하던 자매들이 성장하여 남편, 아이, 제자들과 함께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열어 드리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속의 조는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분신이다. 조의 자매인 메그, 베스, 에이미는 루이자의 실제 자매인 애나, 베스, 메이였고, 마치 부부는 루이자의 부모인 올컷 부부가 모델이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183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아모스 브론슨 올컷과 애비 메이 올컷의 둘째 딸로 태어나 1888년 56세로 사망할 때까지 대부분 보스턴과 콩코드에서 살았다. 19세기 전반, 미국의 콩코드 지역에는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초월주의(超越主義·Transcendentalism) 철학가로 불리는 사상가들이 모여 살았다. 특히 여성주의 교육자인 마가렛 풀러와의 교제는 어린 루이자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루이자는 평생 철학자인 아버지와 아버지의 동료들을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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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작은 아씨들' 초판본 표지를 입혀 최근 재출간된 책들. 맨 왼쪽은 RHK의 초판본 표지 버전, 오른쪽 두 권은 출판사 더스토리의 '작은 아씨들' 초판본 버전이다. RHKㆍ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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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가 이끄는 가정에 사는 것은 존경과는 별개로 힘든 일이었다.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 브론슨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학교를 세웠지만 학교는 곧 문을 닫곤 했다. 학교 설립을 위한 모든 시도가 좌절된 후, 올컷 가족은 1843년에서 1844년 사이에 농장에서 생활했다. 아버지의 이상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고기 등 동물성 음식은 금지했기에 가족은 반년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죽, 물만 먹으며 일했다. 동물 착취도 금지했기에 털실을 이용할 수도 농사에 가축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는 생명체는 말이나 소가 아니라 아내와 딸들이 되었다. 추위와 영양실조 때문에 이상촌 건설은 6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가족은 어머니가 유산으로 받은 집이 있는 콩코드로 이주해 살게 된다.

가족은 늘 생계가 곤란했다. 애나와 루이자는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배우다가 경제 활동에 나섰다. 막내 메이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루이자는 삯바느질도 하고 가정교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버는 한편 다락방에 올라가 글을 썼다. 1868년 '작은 아씨들'이 크게 성공한 덕분에 드디어 올컷 가족은 가난에서 벗어났다. 이후 '작은 아씨들'의 속편 격인 '조의 아들들(1886)'을 비롯, 루이자는 30여 편의 소년소녀 가정 소설을 창작한다.

루이자를 '굽은 솔'로 여겼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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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 속 마치 일가 네 자매의 모습(왼쪽 사진)과 소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 삽화. 소니픽처스 제공·위키피디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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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의 성공 이후 아버지는 루이자가 새로 꾸며 준 서재에서 독서와 사색, 집필을 하며 여전히 이상을 추구했다. 소설 속 훌륭한 목사이자 아버지인 마치 씨의 모델이기에 유명세를 타서 많은 강연 요청을 받기도 했다. 대신 가족을 돌본 사람은 루이자였다. 남편과 사별한 언니 애나와 조카들을 부양하고, 화가 지망생인 막냇동생 메이를 프랑스에 유학 보낸 후, 메이가 세상을 떠나자 아기 조카를 데려다 키웠다. 그러기 위해 루이자는 원고를 쓰던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으로 이어 쓰며 가족을 부양했다. 이런 작가의 모습이 나는 안쓰럽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노력만 하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딸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브론슨 올컷은 둘째 딸 루이자를 타고난 심성이 거칠다며 엄격하게 대했다. “규율 따위는 상관없이 자기 본능에만 충실하다”고 겨우 1살 나이의 루이자를 혹평했다. “엄마를 닮아 너는 문제가 있다“는, 부모라면 절대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어린 루이자에게 수시로 했다. 아내와 루이자는 갈색 머리여서 자아가 강하고 악마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브론슨 자신은 금발이었기에 결국 자기만 잘났다는 소리다.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기독교적 이상에 맞는 유순하고 희생적인 사람으로 엄격히 교육했다지만, 그건 아버지인 자기에게 순종하는 딸로 만들려 했다는 소리다.

우리는 안다. 밖에서는 진보적 인사로 존경받지만 집에 돌아와 아내와 딸 앞에서는 한없이 구식 사내였던 많은 아버지들을. 브론슨 역시 그랬다. 딸의 능력과 수고를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고 루이자를 늘 비판적으로 대했다. 자신이 져야 할 가족 부양의 의무를 그녀에게 전가하면서도 상업적 소설을 쓴다고 딸을 못마땅하게 대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소설 '작은 아씨들'의 바에르 교수의 모습에 반영되어 있다. 조와 결혼하게 되는 바에르 교수는 조를 맹렬히 비판한다. "이런 책을 읽히느니 차라리 조카들에게 화약을 주겠소!"라고 말한다. 어려서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행동을 검열하던 루이자는 자라서 작가가 되어서는 아버지의 숭고한 이상에 맞춰 자신의 원고를 스스로 검열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끝까지 아버지를 책임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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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 속 마치 일가 네 자매의 모습. 소니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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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인생을 망치고 모두에게 미움을 받을 것 같아서요. 오, 엄마!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요!”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주인공 조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본다. 위의 인용 부분에서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평생 혼자 외롭게 살까봐 무서워한다. 이때 조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어머니 마치 부인이다. 작가인 루이자도 그랬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심어 놓은 부정적 자아상 때문에 고민할 때면 어머니의 위로를 받곤 했다. 어머니인 애비 메이 올컷은 딸들에게 ‘가난해서 결혼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다면 자존심 있고 당당한 독신녀로 살라’고 권하는 등,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여권 운동가이기도 해서 루이자 역시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성투표권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다행히도, 루이자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또 다행인 점이 있다. 작가는 가족 부양을 위해 쓰기 싫은 소설을 쓴다며 가족을 원망하지 않았다. 루이자는 소설 쓰기를 즐겼다. 기독교 정신이 넘치는 교훈적인 가정 소설은 본명으로 쓰고, A. M. Barnard를 비롯한 여러 가명으로 그늘진 환경과 성격을 가진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고딕 스릴러 소설을 쓰기도 했다. 성실하고 사랑스런 가정교사의 가면을 쓴 악녀의 이야기인 '가면 뒤에서(Behind a Mask)'가 대표적이다. 아버지의 이상은 딸의 이상이 아니었고, 딸은 아버지 몰래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것이다. 덕분에 작가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을까.

보통 부모 사망 이후에는 부양 의무와 함께 부모의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루이자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의 일 처리를 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2일 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 딸의 소설과 인생을 평생 검열한 셈이다. 왜 그랬을까? 어릴 때야 그랬다고 치더라도, 딸이 성공한 작가가 된 후에도 왜 그랬을까?

흔들리지 마라, '굽은 솔'들아


‘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는 속담을 생각한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 능력을 펼치러 떠날까봐 상대를 일부러 ‘굽은 솔’로 만들어 ‘선산’을 지키게 만드는 사람이. 늙은 자신을 무시하고 봉양하지 않을까봐 자식 중 하나를 어려서부터 구박해 길들이는 부모가.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비웃을까봐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적 언행을 하는 가장이. 자신이 못나 보일까봐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의 능력이나 외모를 깎아내리는 남자가. 한편 반대쪽에는 무시당했기에 오히려 학대받는 관계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못났다고 세뇌당하며 자랐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지나치게 헌신하는 자식들이. 남자형제와 차별받고 자랐기에 늙은 부모의 병수발을 당연히 강요당하는 딸들이.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여겨서 대가 없이 노력하는 여성들이.

루이자 올컷이 살았던 19세기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나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너무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 기억하자.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굳이 나를 옆에 두려는 사람이 바로 나를 ‘굽은 솔’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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