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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비선출 예비역 장교? 여기 '선수 출신 예비역 중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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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스포츠

선수들에게 베팅 볼을 던져 주는 이용찬 코치. NC 투수 이용찬과 동명이인인 그는 예비역 장교라는, 야구선수로서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사진=이용찬 코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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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미생들의 프로무대 도전을 그린 다큐멘터리, 'KBS 청춘야구단 : 아직은 낫아웃'에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선수 중 하나가 '예비역 장교 출신'의 이동규(가평 웨일스)였다. 장기 군복무를 신청한 상태에서 찾아간 야구 레슨장에서 본인의 '타고난 야구 재능'을 뒤늦게 발견했던 이동규는 과감하게 전역을 선택,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도전을 선택했다. 비록 비선출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청춘야구단에서는 하차해야 했지만, 장교답게, 본인의 단점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프로야구 드래프트 신청서까지 제출한 이동규는 그 어느 때보다 '일반인 트라이아웃' 일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가 한선태(LG)에 이어 또 다른 비선출 신화를 쓸지 지켜볼 만하다.

그리고 여기, 이동규의 모습을 보고 감회에 젖는 이도 있다. 이제 40을 갓 넘긴 나이에 옛 생각에 빠진 듯 천천히 이야기를 꺼낸다.

"장교 출신 비선출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남 일 같지 않다. 나는 그 반대로 선수 출신 예비역 장교 아닌가!"

건국대의 재간둥이 내야수 이용찬,
포병 장교 전역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본인을 '전직 대학야구 선수'로 소개하는 이는 바로 이용찬(40) 코치다. 현재 권혁돈 감독의 영입 제의를 받고 '야구를 통하여 참된 그리스도인 선수'로 거듭난다는 목적을 지닌 HBC 합류를 앞둔 예비역 중위이기도 하다. 보통 학생 선수들이 프로 무대 도전을 위해 재학 도중 휴학을 선택한 이후 빠르게 군복무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 코치처럼 졸업 이후 장교의 길을 걷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용찬은 '야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장교의 길을 택했다. 남들이 들으면 의외라고 생각할 만했다.

"장교 양성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대학 때 왜 스위치 히터로 전환할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군대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또 몸도 만들면서 프로 무대에 재도전하고 싶다."

이것이 이용찬 코치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는 장교양성과정, 포병학교 보수교육 수료 이후 수도포병여단에서 군 복무를 성실하게 마쳤다. 주위에서 장기 복무 권유도 있을 법했지만,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 하게 그는 중위 예편을 선택했다.

"성실하게 몸을 만들었다. 그래서 입단 테스트 하는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프로 입문에는 실패했지만, 야구를 했던 지난 시간에 오히려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다. 다행히 이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면 좋은 제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게 '예비역 중위'의 또 다른 선택은 지도자의 길이었다. 군 생활을 통하여 얻은 성실함을 인정받아서였는지 그는 소래고, 상우고, 비봉고에서 코치를 했다. 이후에는 개인 레슨장을 차려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등 최근까지 그는 바쁜 행보를 보였다.

그랬던 어느 날, 뉴스 지면을 통하여 '이용찬, 프로 입단' 기사를 접하게 됐다. 필자를 포함하여 '코치 이용찬'을 아는 이들 입장에서는 전역 이후 프로 입성에 성공한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해프닝이었다. 동명이인이기도 한 '장충고 투수 이용찬(현재 NC)'이 두산에 입단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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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시절, 타이완과의 교류전에서 맹활약한 이용찬. 대학 야구 당시 신문지상에도 자주 이름이 등장할 만큼, 그는 꽤 주목 받았던 대학야구 선수였다. 사진=이용찬 코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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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정말 전화 많이 받았다(웃음). 그런데, 투수 이용찬이 지명 받았을 때 나는 군 생활에 한창이었을 시기였다. 내가 아닌 줄 알고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때만큼 또 좋았던 적은 없었다. 내 이름이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닌데(웃음)."

지도자 생활을 성실하게 했던 만큼, 야심차게 시작했던 레슨장 역시 꽤 괜찮게 운영됐다. 다른 레슨장에서 제대로 된 야구를 배우지 못해 이용찬 코치를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잘 나갈 때 덮친 코로나19로 인하여 레슨장 운영도 한동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같은 기독교인이도 한 권혁돈 감독이 이용찬에게 영입 제의를 했다. 그리스도 정신을 지향하는 야구선수의 육성은 그야말로 이용찬 코치에게 최선의 과제이기도 했다.

"권혁돈 감독님께서 오라고 하셔서 두말 없이 가겠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레슨장 정리인데, 이게 또 쉽지 않다.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이 형태 그대로 가져갔을 텐데, 너무 아쉽다. 이것만 정리하면, 마음 편하게 HBC에서 지도지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사실 야구를 한 이들 입장에서 이용찬은 '비교적 성공한 사람'에 속한다. 그만큼, 야구를 그만 두고 방황에 빠져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이용찬 코치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

"야구를 했던 모든 선수들이 프로를 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다른 길로 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 선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맞지 않다. 물론, 나처럼 풀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것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가는 길도 있다 라고 지도하는 것이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9회 말까지 향하는 인생의 항로에서 이제 3회 말 공격을 마친 이용찬.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왔고, 그 안에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역 육군 장교'로서 성실함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그의 지도자 인생에 꽃길만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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