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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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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영원한 우주정신이 일시적 형체를 가진 물질로 화현하여 그꼴 형상에 맞는 마음과 능력을 가지고 한바탕 놀아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4차원이 3차원 환영세계를 창조했다고나 할까요.

이를 무한 전체가 유한한 개체놀이를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식으로는 하나님의 다양한 피조물의 배역 놀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불교식으로는 부처의 중생 체험 마당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닥쳐도 삶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다 존재의 영적 성장과 자각을 위해 언젠가는 체험해야 할 다양한 경험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든 ‘또한 지나갈 뿐’입니다.

한마음선원의 대행 스님이 “왜 다들 공부해서 잘 되려고들 만 하냐? 나는 윤회해서 구더기가 되어도 상관없어. 구더기 몸을 가져도 보살행은 할 수 있는 법이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참 별소릴 다 하신다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참으로 그렇습니다. <보리도차제론>(11세기 스승 아티샤가 산스크리트어로 저술한 불교 문헌)에는, 수행에는 하사도·중사도·상사도의 세가지 길이 있는데 하사도는 복덕쌓기, 중사도는 나만 해탈함, 상사도는 지옥에서조차도 대승적 보살행을 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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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골고루 다 체험해보는 것이라면 뭔들 싫다며 피하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수많은 생에서 한때 거지였고 한때 왕이었으며 또 도둑이나 사기꾼 혹은 사람도 아닌 동물의 몸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열어 본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번 생에 오히려 골고루 체험할 궁리를 해야지 어째서 더 잘되어야만 한다는 아상(에고)을 갖고 좋다거나 싫다면서 요리조리 피하고, 갖은 분별 궁리만 하겠습니까?

지금 가난하다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지난 생이나 다음 생에는 부자였고 건강했으며 미남미녀였다는 증거이니까요. 한쪽만 체험하면서 어떻게 전체 진리를 만나겠습니까?

마음과 정신을 이렇게 분별없이 활짝 열어젖힌다면 호연지기가 절로 깃들 것이며 살아가면서 두려워할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삶에 다가오는 모든 난관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 뛰어 넘어 성장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바로 이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요체입니다.

글 김연수(피올라마음학교 교장·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사·<정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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