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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터뷰]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우아한 사랑 이야기, 탕웨이·박해일 잘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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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의 제목과 기획 의도를 밝혔다.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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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59)이 ‘헤어질 결심’으로 돌아왔다.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로맨스 스릴러다. 지난달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 대해 “조금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순수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 내가 순수하다고 말할 때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라든가 감독의 어떤 주장 같은 것을 포함하지 않은 영화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나 기교가 없는, 배우들이 뭔가를 한다거나 슛은 이렇게 한다거나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들로 간결하게 구상해서 깊은 감흥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것이 받아들여질지 아닐지 잘 모르겠더라. 너무 구식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오히려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더 새로워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에 대해서는 “‘헤어질 결심’이라고 하니까 동료 영화인들이 독립영화 제목 같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더러 있더라. 그래서 좀 당황했다. 독립영화 제목이라는 게 뭐가 따로 있나 싶어서 그렇냐고 반문했다. 저는 ‘아가씨’ 때도 그랬지만, 정서경 작가와 대화를 통해서 제목을 떠올릴 때가 많다.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이때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하냐고 말했는데, 이 말이 제목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 제목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관객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결심'이라는 말을 할 때 성공하는 것은 드물다. 살 뺄 결심이 잘 안되는 것처럼, 결심은 실패로 연결되는 그런 단어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끝내 헤어지지 못하거나 굉장히 고통스럽게 헤어지거나 그런 것이 바로 연상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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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탕웨이와 박해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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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처음부터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여자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설정했다. 영화 ‘색계’ ‘만추’ ‘황금시대’의 탕웨이를 보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단다.

그는 “이 작품은 탕웨이가 먼저다.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중국인으로 정했다. 그래서 탕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창조됐다. 캐릭터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작동한 거다. 그전에 사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전에 영화를 보고 가지고 있던 막연한 인상과 매력을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해하면서 이런 모습의 탕웨이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각본을 썼다”고 말했다.

이어 “각본 완성 전에 탕웨이를 만나서 캐스팅을 제안했고, 하겠다는 의사를 받고 각본을 더 썼다. 탕웨이를 일대일로 만나서 알아가는 과정과 각본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됐다. 탕웨이를 알게 되면서 각본에 반영된 거다. 예를 들면 실제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해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거나 작업 방식에 대한 소신이 뚜렷해서 그런 면을 각본에 반영했다”고 부연했다.

또 한국어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탕웨이에 대해 “지독한 프로페셔널이다. 한국어 대사를 소리나는 대로 달달 외워서 앵무새처럼 흉내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법 기초부터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미련하리만큼 우직하게 한국어를 배웠고, 자기 대사만이 아니라 상대 대사도 외워서 저 단어 하나하나 무슨 뜻인지 이해하며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의 한국어는 비록 우리와 발음은 똑같지 않아도 조사 하나 어미 처리 하나도 자기의 의도가 담긴, 해석이 담긴 그런 대사였다. 정말 우직하다. 기초부터 한 단계 밟아 올라가야 하고, 훅 뛰어 넘어가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더라. 뭐든지 자기 머리로 이해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성품”이라며 치켜세웠다.

남자 주인공 박해일도 탕웨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박해일이란 사람을 상상하면서 각본을 써보자고 정서경 작가에게 제안했다. 그대로 캐스팅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박해일이 아니라 실제 박해일의 담백하고 깨끗하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모습을 캐릭터에 조금 도입하자고 생각하고 썼다. 해준에게 그런 모습이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해준은 경찰 공무원이라는 확고한 직업을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경찰 공무원으로서 직업윤리나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입어야 하는 게 예의다. 용의자도 유죄 확정 전에는 공정하게 친절하게 대한다. 그런 사람이 자기의 윤리를 배반하게 되는 처지에 오는 딜레마와 고통이 커질 거라고 봤다”고 귀띔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를 이끌어나간 두 배우 탕웨이 박해일의 케미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배우들의 케미가 좋다, 나쁘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그 건 배우들의 능력과 연출력에 달린 문제다. 타고난 게 안 맞는 건 없다. 어떤 조합을 상상하든 간에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진다는 독특한 조합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연기를 잘하고 좋은 감독을 만나면 좋은 케미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저 되는 건 아니고 당사자들이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배려해주고, 눈빛만 봐도 알게 되는 단계까지 가면 좋다. 감독과 스태프에게 말하지 못해도 배우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법이다. 서로 배려하고 그런 배려를 느끼면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나. 연기는 상호작용이다. 서로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면서 주고받는 거다. 이 두 사람은 천성이 사려 깊고 자상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라 잘 만났다. 서로에게 감동하면서 감동을 주고받으면서 일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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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누구보다 한국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사진|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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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 ‘아가씨’ 등 그동안의 작품들이 주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박찬욱 ‘헤어질 결심’으로 오랜만에 15세 이상 관람가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그럼에도 ‘에로틱한 느낌이 풍긴다’는 평이 나오는 것에 대해 “특별히 관능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며 “에로틱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구상하거나 배우들에게 어떤 표정을 주문한 건 아니다. 그런데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결국엔 에로틱하거나 섹시하다는 감정이 얼마나 정신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육체적 터치보다는 사랑과 관심, 그런 류의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적인 즐거움까지도 유발하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칸 상영 직후 약 8분간의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았고, 영화제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 데일리에서 4.0 만점에 3.2점을 받아 21편의 경쟁 부문 초대작 중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어 국내 시사회 후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누구보다도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고백했다.

박찬욱 감독은 “전문가들의 리뷰가 좋은 건 당연히 직업적으로 굉장히 뿌듯하다”면서도 “그런데 역시 제일 중요한 건 돈을 내고 표를 사서 영화 보는 일이 직업이 아닌, 안 봐도 되는데 극장에 와서 시간을 내서 돈을 내고 보는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만족스러워하는 지가 뭐니 뭐니해도 중요하다"며 미소 지었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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