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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데스크 칼럼] 양자기술, 퀀텀점프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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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의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무게 1t이 넘는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발사체 기술은 로켓에 탄두를 탑재해 다른 국가 영토에 떨어뜨리면 그대로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이 된다는 특성 때문에 기술 교류가 극도로 폐쇄적이다. 나로호 발사 과정에서 협력국인 러시아로부터 핵심 기술을 거의 전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몇 년 전 만났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관계자는 “로켓의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의 경우 정보가 너무 부족해 구글링으로 찾은 외국 로켓 사진을 토대로 수없이 역설계를 반복했다”며 “초기에는 출력을 통제하지 못해 엔진이 녹아내리는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고 했다. 지난 2010년 3월부터 시작해 총예산 1조9572억원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항우연 연구진 250명과 300여개 기업 500여명 엔지니어의 경험과 역량 덕분이다.

발사체 기술 못지않게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분야가 있다. 바로 양자기술이다. 양자(quantum)는 물리학에서 더는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뜻한다. 디지털 정보단위인 비트(bit)가 0 또는 1의 값을 가지는 데 비해 양자 정보단위인 큐비트(qubit)는 0과 1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과 큐비트가 서로 연동되는 ‘얽힘’의 속성을 가진다. 양자기술은 이런 특성을 실생활에 접목하는 것이다.

산업계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양자컴퓨팅이다. 양자컴퓨팅이 가능한 컴퓨터를 양자컴퓨터라고 하는데, 중첩과 얽힘이 완벽하게 구현되면 n개 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는 2의 n승에 해당하는 연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어 컴퓨팅의 신기원이 열리게 된다. 이론상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해독하는 데 100만년이 걸리는 1024비트 암호를 10시간 안에 풀 수 있다.

미국은 양자기술을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일찌감치 투자에 나섰다. 지난 2018년 국가양자이니셔티브를 제정했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양자컴퓨터에 쏟아붓는 법안에 서명했다. 구글과 IBM의 치열한 양자컴퓨터 선두 경쟁도 흥미진진하다.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양자굴기’를 내세우며 유럽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초전도회로와 양자광학기술 등에서는 유럽을 추월하고 미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은 유럽양자기업컨소시엄을 지난해 4월 출범하고 2028년까지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 규모 퀀텀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본도 지난 4월 양자미래사회비전을 발표하고 2000억엔 (약 1조9000억원) 규모 광양자컴퓨터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의 양자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선진국의 양자기술 수준을 100이라고 하면 한국은 85 정도로 기술 추격자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부는 2030년 양자기술 4대 강국을 목표로 양자컴퓨터와 양자인터넷에 올해부터 5년간 946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양자기술은 각 국가의 경쟁이 치열해 협업도 쉽지 않다. 지금의 투자와 인력 수준을 보면 앞선 국가를 영영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중장기 계획을 세워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전문 인력 양성이 중요한데 전담 학과 개설도 필요하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전담 연구조직은 필수다.

양자컴퓨터 연구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달 16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2 사이버보안콘퍼런스에 참석해 “양자통신은 이미 상용화됐으며 양자컴퓨터도 10~20년 후 실생활에 본격적으로 사용돼 여러 영역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며 “4차산업혁명의 특징이 초연결성과 초지능성인데, 양자컴퓨터가 초지능성에서 ‘퀀텀점프’를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지적처럼 양자기술은 미래기술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머뭇거리다 보면 양자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재도전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창환 정보과학부장(ch2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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