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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허연의 책과 지성] 친구를 가까이 둬라, 적은 더 가까이 둬라…마리오 푸조가 남긴 서늘한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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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영화로도 유명한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The Godfather)'는 운명적이고 비장하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 운명처럼 마피아 세계에 발을 담게 되고, 결국 조직의 리더가 되어 그 업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담백한 문장이 압권이다. 낭비라고는 없는 문장 속에는 인간사를 꿰뚫는 작가의 시선이 총알처럼 박혀 있다.

암흑세계를 다뤄서일까. 소설은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 문장들로 그득하다. 특히 과묵한 돈 콜레오네가 가끔씩 던지는 말들이 그렇다.

상대 조직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는 아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동양고전에나 나올 법한 아포리즘이 미국 갱두목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것이 '대부'의 매력 아닌가 싶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대부의 캐릭터는 단순한 갱스터 소설로 끝났을지도 모를 소설의 격을 한 차원 높였다. 물론 돈 콜레오네 같은 인물이 실제 암흑세계에서는 존재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주옥같은 구절은 계속 나온다.

"누구도 절대 네 생각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건 또 얼마나 멋진 잠언인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둑기사 이창호의 별명이 '돌부처'였다. 상대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는 담대함과 건조함이 그의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아포리즘은 조직을 물려받은 아들 마이클에게 전수된다.

"친구는 가까이 둬라, 적은 더 가까이 둬라."

"입은 닥치고 눈을 크게 떠라."

사실 이 모든 구절은 푸조의 문학적 역량에서 나온 것이다. 푸조는 1920년 뉴욕 빈민가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2세로 태어났다. 12세 때 철도원이었던 아버지가 가출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이민자의 시선을 담은 소설 '어두운 투기장' '행운의 순례자'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1966년 출판사로부터 5000달러의 생활비를 선불로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이 '대부'다. 대부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뒤 67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 세계적으로 2500만부가량 팔려나갔다.

할리우드로 자리를 옮긴 푸조는 '대부 1, 2, 3' 편의 각본 작업을 했고 '대부 2'로 오스카 각본상을 받았다.

영화가 대성공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한 푸조는 평소 '운명은 결국 한 가지 길을 가리킨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소설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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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은 하나밖에 없다. 그날 밤 그가 파누치에게 뇌물을 상납했다면 아마도 평생 조그만 식료품점의 점원 노릇이나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지하세계의 두목이 되게 했고 그 운명의 길에 파누치를 제물로 던져 놓았던 것이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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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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