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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한미일 회담, 박근혜의 한미일 회담...다르면서 같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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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정상회담 이후 역사문제 해결 위한 한일협의 전망... '미국 입김'만 봐선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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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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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취임 열흘여 만인 5월 21일, 서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긴 했지만, 그건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양자 회담이었다. 복잡한 역학관계를 읽으면서 순발력과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다자외교, 그것도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와는 분위기가 전혀 딴판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첫 국외 외교무대 데뷔 성적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바이든 대통령이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손만 내민 '무성의한 악수', 눈 감은 윤 대통령 사진의 나토 누리집 게재 같은 의전 실수 등이 화제에 올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존재감이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이 낮은 평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일본과 양자 회담이 무산됐고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에서 한 차례 바람을 맞은 것은 사소한 의전 실수보다 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미국, 한국을 부르다... 일본, 강경한 태도를 취하다

미국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한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중국 견제' 전선에 확실하게 가담했다는 것을 국제 무대에서 과시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아울러 이 기회에 한미일 정상회담을 주선함으로써 역사 문제로 갈등하는 한일 양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손을 잡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듯한 윤 대통령의 태도로 보아 미국이 굳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주선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에 3자 회담 형식으로 된 데는 일본 변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반기면서도 강제동원 노동자(일본 용어로는 '징용공') 피해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이 먼저 해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회담을 할 수 없다는 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방침에 따라 6월 중에 추진되던 박진 외교부장관의 일본 공식 방문이 연기됐고, 나토 정상회담에서 조율하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대신 일본 표현으로는 '다치 바나시', 즉 잠깐 서서 환담하는 수준의 대화만 이뤄졌다.

일본의 이런 강경한 태도는 7월 10일 열리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4년 등 떠밀린 한국-일본... 결과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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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표정 한미일 정상 ▲ 2014년 3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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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2014년 제3차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선으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과 가장 다른 점이다. 2014년 당시는 한국이 일본을 압박했다면, 지금은 일본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는 식으로 일본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이번엔 일본이 '강제동원 노동자 피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대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고 한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2014년 헤이그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한일 군대위안부피해자 합의'를 위한 길을 닦아줬다. 2014년 3월 25일에 3국 정상회담이 얼렸는데, 4월 16일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국장급 협의가 개시됐다. 그리고 1년 8개월여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불가역적 해결'과 '소녀상 이전' '국제사회 비난 자제' '한국 정부의 해외 소녀상 건립 불간여' '성노예 표현 사용 금지' '정대협 활동 억제' 등의 비공개 내용을 담은 '12.28 합의'가 나왔다.

발표 당시엔 비공개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 합의의 수용성이 높은 듯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비공개 부분이 슬슬 불거져 나오며 한국에서 이 합의가 파탄을 맞게 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마드리드 3국 정상회담 이후 한일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2014년 헤이그 3국 정상회담 이후의 행로가 어느 정도 답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일단 미국의 떠밀기에 양국이 외교적으로 타결책을 찾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것이 6월에 모색하다가 중단된 외교장관의 일본 방문일 수도, 윤 대통령의 방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꼬인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니까 그때보다 전개 속도가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 된다... '좋아, 빠르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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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귀국길 공군 1호기에서 참모회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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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한일 사이의 역사문제를 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정부간 협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국내의 합의 형성이다. 그런데 내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런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취임 2개월도 되지 않은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0% 초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심지어 지지보다 반대가 높은 역전 현상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지도로는 국내의 비판세력을 설득할 여력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일의 협력을 간절하게 원하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다고 해서, 한일 사이의 역사 갈등을 속성으로 풀어서도 안 되고 풀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2014년 헤이그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한 한일 정부 사이의 위안부 해결 노력의 실패가 여실히 보여주는 교훈이다.

2022년 마드리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보면서 2014년 헤이그의 3국 정상회담 이후 벌어졌던 일들이 기시감처럼 떠오르는 것은, 3국 정상회담 → 무리한 한일 역사 갈등 해결 모색 → 국내 반발 → 한일관계 파탄의 전철이 되살아날까 심히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오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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