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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홍콩 방문 시진핑에 대항한 "비바람"은 없었다…국제 반응은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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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비바람을 겪은 뒤 (홍콩시민) 모두가 홍콩이 다시 혼란상태로 빠져서는 안 된다고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1일(현지시각)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을 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오전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 및 존 리 새 홍콩 행정장관 취임 기념식 연설에서 전날에 이어 다시 한 번 안정을 강조했다. 전날 홍콩에 도착한 시 주석은 도착 직후 짧은 연설에서도 "홍콩이 비바람을 겪고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났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거듭 언급한 "비바람"은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를 계기로 일어난 대규모 반중 시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홍콩을 향한 태풍 외에 시 주석이 '비바람'을 마주할 일은 없었다. 5년 전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홍콩을 방문했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당시 홍콩 시내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와 친중 시위가 개최됐고 경찰은 시위를 통제하느라 바빴다. 시 주석의 방문이 아니어도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7월1일에는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등 통상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개최됐다. 그러나 올해는 관련한 집회 신고가 한 건도 없었다. 미 CNN 방송은 홍콩 민주단체 사회민주연맹이 보안경찰과 면담 뒤 기념식 당일 시위를 벌이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대규모 보안 인력을 동원해 행사장 인근 인도와 도로를 통제하고 지하철역을 폐쇄하고 임시 비행 제한 구역을 설정하는 등 최고 수준의 보안 태세를 유지했다.

2019년 시위를 계기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투옥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6월 이후 시위와 관련해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체포됐고 30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2014년 민주화 시위를 이끈 조슈아 웡을 비롯해 활동가, 의원, 학자를 가리지 않고 홍콩의 저명한 민주인사 47명이 보안법에 따른 국가 전복 기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시 주석이 코로나19 대유행 뒤 2년 6개월만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를 떠난 중요도 높은 행사지만 주요 언론의 취재도 "보안", "방역" 등 불분명한 이유로 차단됐다. CNN은 자사 기자를 비롯해 <로이터> 통신, <AFP> 통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적어도 언론인 10명의 취재 신청이 거부됐다고 홍콩기자협회(HKJA)가 밝혔다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및 관영 매체 <환구시보> 는 홍콩 반환 25주년 관련 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홍콩 언론의 자유는 이미 크게 위축된 상태다. 지난해 홍콩의 대표적 민주언론 <빈과(핑궈)일보>, <입장신문> 폐간에 이어 올초 독립 언론 <시티즌뉴스>도 자진 폐간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22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홍콩은 180개국 중 148위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68계단이나 하락했다. CNN은 "안정에 집착하는 권위주의 지도자 시 주석에게 이번 홍콩 방문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할 것"이라며 "이전 방문 때와는 달리 지역 언론 1면에서 비판적 기사를 발견하거나 옥외 광고판과 길거리에서 반중 시위대의 구호를 마주하는 등의 어떤 공식적 저항 표현도 목도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시 주석은 이날 30분 가량 이어진 연설에서 홍콩이 중국의 전면적 관할권 안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와 같은 좋은 체계는 바꿀 이유가 없고 유지돼야 한다"면서도 "홍콩의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중국 중앙정부의 완전한 관리권이 통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또 홍콩이 "'애국자'에 의해 통치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25년 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됐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시행된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 원칙에 따라 홍콩 민주 진영의 공직 진출은 사실상 차단됐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30일 영국이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때 향후 50년간 보장하도록 했던 일국양제 약속을 "중국이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는 홍콩시민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번영과 진보에도 위협"이라고 했다. 존슨은 "우리는 홍콩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영국은 "중국이 약속을 지키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30일 성명에서 "홍콩과 중국 당국이 더 이상 민주적 참여, 기본적 자유, 독립적 언론을 일국양제의 요소 중 하나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우리는 홍콩 시민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약속된 자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요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1년여 간 홍콩시민 12만명 영국행…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홍콩 젊은이는 2%뿐

최근 수 년 간 홍콩 내 자유가 크게 훼손됐다고 평가되는 가운데 많은 홍콩 시민들이 나라를 떠났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올해 1분기 말까지 영국해외시민(BNO·British National Overseas) 여권을 신청한 홍콩 시민이 12만34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홍콩 반환 뒤에도 홍콩 시민들이 영국에 비자 없이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도록 1985년에 만들어진 이 시민권의 효력은 홍콩 보안법 통과 뒤 지난해 1월31일부터 5년간 체류가 가능하고 이후 영국 시민권도 신청할 수 있도록 강화됐다. 홍콩 인구의 70% 가량인 540만명이 이 시민권의 적용 대상이 된다. 영국 정부는 30만명 가량의 홍콩 시민이 BNO를 통한 이주를 신청할 것으로 봤다.

떠나든 남든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과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에 태어난 두 젊은이의 상반된 인터뷰를 실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쪽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나는 중국인"이라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다른 한 쪽은 "나는 홍콩인"이라며 중국의 인권 상황과 홍콩에 대한 억압을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통합 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홍콩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홍콩민의연구소(PORI) 자료를 분석해 올해 6월 기준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18~29살 홍콩 시민은 2.2%에 불과하며 반환 직후인 1997년 8월의 16.5%, 10년 전인 2012년 6월 8%보다도 훨씬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반면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이 연령대 비중은 97년 8월 46.2%에서 2012년 6월 69.3%까지 올랐고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2019년 12월에는 81.8%에 달했다. 올해 6월 기준으로는 76.3%다.

프레시안

▲홍콩 반환 25주년인 1일(현지시각)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반환 25주년 행사에서 존 리 신임 홍콩행정장관(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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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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