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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南 전단발 코로나' 꺼낸 北...남남 갈등 유발, 故 이대준씨 사건 되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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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코로나19 발병 인정 두 달만에 '한국 발 대북전단 유입 설(說)'을 꺼냈다. 남남 갈등을 유발하고 해수부 공무원 피살 관련 대내외 비난 여론에 역공하려는 '다목적 포석'이란 분석이다.

중앙일보

1일 북한 조선중앙TV에서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인 유영철이 북한 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입 경로를 브리핑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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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제물 삼아 책임론 탈피



1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국가비상사령부가 지난 4월 하순부터 우리 나라에서 급속히 전파된 악성 비루스(바이러스)의 유입 경로 조사 결과를 밝혔다"며 "금강군 이포리가 악성 전염병의 최초 발생지역이라는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4월 초 이포리에서 군인 김모(18살)와 유치원생 위모(5살)가 병영과 주민지 주변 야산에서 색다른 물건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이어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풍선에 매달려 날아든 색다른 물건들을 각성 있게 대하고 출처를 철저히 해명하며 발견 즉시 통보하도록 했다"고 했다.

'색다른 물건'으로만 표현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두 달 간 역학 조사를 거쳐 "과학적, 최종적 확증"한 발병 원인이 한국의 민간 단체가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낸 '대북 전단'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 민심 이반 요소의 원인을 한국에서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북한식 선전선동 수법이라고 분석했다. "최고지도자 책임론에서 벗어 나려는 정치적 수"(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라는 지적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는데, 한국에 화살을 돌리는 게 북한으로선 여러모로 용이한 측면도 있다. "향후 북ㆍ중 교역에 차질을 고려하면 중국을 코로나19 유입 경로로 꼽을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남측 접경 지역을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분석도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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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4월 25~26일 경기도 김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 등이 담긴 대북 전단 100만장을 대형 기구 20개에 매달아 북한에 날려 보냈다고 주장하며 28일 공개한 사진. 자유북한운동연합.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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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전단 통한 유입 불가능"



통일부는 즉각 반박했다. 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전단 등을 통한 북측으로의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못박았다.

우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차 부대변인은 "물체의 표면에 잔존한 바이러스를 통한 감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질병관리청 등 관계 기관과 전문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들의 공통된 견해"라며 "물자나 우편물 등을 통해 감염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증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측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북측이 최초 접촉 시기로 언급한 4월 초보다 늦은 4월 25~26일"이라고도 덧붙였다.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 전단 100만장을 날렸다고 주장한 때보다 북한 주민이 '색다른 물건'과 접촉한 시기가 앞서는데 어떻게 전파 경로가 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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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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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 둘러싼 남남갈등 노리기



앞서 북한은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2020년부터 대북 전단을 통한 바이러스 유입 설을 꺼내들었다. 당시 정부와 여권에서 이런 주장을 그대로 옮겨 확대 재생산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0년 6월 당시 단국대 석좌교수였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은) 삐라 등 물품을 통한 코로나 감염을 제일 경계한다"고 했고,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탈북민들이) 접경지역에서 삐라를 날리거나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보낸다는 이야기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나올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통일부는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설명 자료에서 "일부 탈북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묻힌 물품을 살포해 북한에 코로나19를 확산시키자고 선동해 북측이 강력 반발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직접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 입장"(지난달 12일, 청문회)이라고 밝히는 등 기류가 달라졌다. 이에 북한이 다시 선제적으로 대북전단 '악마화'에 나서며 '남남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평양 시내에 "풍선, 드론, 강을 통한 감염을 주의하라"는 포스터를 붙이며 여론 선동을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에 따라 북한이 조만간 한국을 직접 거명하며 여론전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한국에 대한 책임 전가를 결정한다면 조만간 김여정 부부장, 통일전선부, 방역사령부, 군부 등의 몰아치기 담화전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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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공개한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이뤄지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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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공무원 사태 '되치기'?



동시에 이는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월북 판단' 결론이 뒤집히고 국제사회까지 "북한은 정보 공개, 가해자 처벌, 유족에 배상 책임이 있다"(토마스 오헤야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지난달 29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여론 되치기에 나선 셈이다.

2020년 초부터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월경자에 대한 총살 명령을 내렸던 북한은 같은 해 해수부 공무원 피살도 "방역 차원에서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사살하고 부유물을 소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발 물품을 통한 코로나 확산설 전파는 이런 주장에 스스로 정당성과 명분을 부여하는 게 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전파 책임 전가는 강경파로 꼽히는 이선권이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된 뒤 북한이 꺼내든 사실상 첫 대남 카드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과학적 역학 조사 결과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이를 빌미로 언제든 대남 공세를 재개할 정치적 명분 쌓기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3월 김여정 부부장 담화를 통해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 폐지,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과거 북한이 공개적으로 대북 전단을 문제 삼은 뒤엔 실제 행동이 뒤따랐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은 지난 2014년 10월 "남조선이 대북 전단 살포를 묵인하면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을 것"이라고 한 뒤 날아오는 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쐈고, 2020년 5월에도 "대북전단은 쓰레기들의 무분별한 망동"이라며 "상응한 행동"을 예고하더니 같은 해 6월 남북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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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와 외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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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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