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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美, 생존한 은퇴 대법관 4명… ‘전관예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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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간병하러”, “워싱턴 싫어서”… 이유도 다양

사무실 제공, 보수 지급… ‘국가 원로’ 대접 받아

보수는 공화, 진보는 민주 정권 때 용퇴 ‘보편적’

6월30일(현지시간) 스티븐 브라이어(84) 미국 연방대법관이 재임 28년 만에 스스로 물러나면서 미국의 은퇴한 전직 연방대법관 수도 4명으로 늘었다. 미국에서 대법관은 종신직이라 용퇴하지 않는 한 평생 재직할 수 있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는 대법관이 있으나 한국과 같은 ‘전관예우’ 논란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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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생존해 있는 미국의 전직 연방대법관 4명. 왼쪽부터 샌드라 데이 오코너(2006년 은퇴), 앤서니 케네디(2018년 은퇴), 데이비드 수터(2009년 은퇴), 스티븐 브라이어(2022년 은퇴).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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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간병하러”, “워싱턴 싫어서”… 이유도 다양

이날 현재 미국에는 은퇴한 연방대법관이 4명 생존해 있다. 올해 92세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1981∼2006년 재임), 86세인 앤서니 케네디(1988∼2018년 재임), 83세인 데이비드 수터(1990∼2009년 재임), 그리고 브라이어(1994∼2022년 재임) 전 대법관이 그들이다.

우리나라는 퇴임한 전직 대법관들이 변호사로 개업한 뒤 대형 법무법인(로펌) 고문 등을 지내며 거액의 연봉을 챙기는 전관예우 관행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지만 미국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브라이어의 경우처럼 대법관이 종신제의 특권을 포기하고 용퇴하는 경우 국가에서 남은 삶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65세 이상이고 대법원에서 근무한 기간이 15년을 넘긴 대법관이 스스로 물러나면 ‘원로 지위’(senior status)가 주어진다. 이 원로법관에게는 사무실이 제공되고 대법관 때와 비슷한 보수도 지급된다. 본인이 원하면 하급심인 연방항소법원 및 지방법원에서 시간제(파트타임) 판사로 일할 수도 있다.

종신제를 보장받는 대법관이 용퇴를 결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유명한 오코너의 경우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봐줄 사람이 없자 간병을 위해 대법관직을 내던졌다. 그는 남편이 사망한 뒤 본인도 치매 증세가 나타나 현재 공식석상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수터는 “수도 워싱턴에서 일하는 게 싫다”며 낙향을 위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몹시 소탈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수터는 대법관이란 고위 공직을 수행하며 늘 격식을 갖추고 때로는 불편한 모임에도 가야 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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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미국 연방대법관(왼쪽)이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는 모습. 치매에 걸린 남편 간병을 위해 사직한 오코너는 대법원을 떠난 뒤에도 연방항소법원 등 하급심 법원에서 시간제(파트타임) 판사로 일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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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공화, 진보는 민주 정권 때 용퇴 ‘보편적’

고령이란 건강상 이유, 그리고 정치적 목적도 대법관을 은퇴로 이끄는 주된 요인이다. 이번 브라이어가 대표적이다. 올해 84세인 그는 대법관직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용퇴를 택했다.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임명된 브라이어는 민주당 대통령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다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래야 후임자로 자신과 같은 진보 성향의 법조인이 대법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202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사례가 크게 작용했다. 역시 민주당 대통령 정권 때 임명된 진보 성향의 긴즈버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2009∼2017) 내내 진보 진영으로부터 용퇴 요구를 받았다. 고령인데다 암 투병 경력이 있는 그가 장차 공화당 집권기에 타계하는 경우 후임자 자리가 보수 대법관한테 넘어갈 수 있어서다. 진보 진영은 “민주당 대통령이 있을 때 물러나면 젊은 진보 법조인이 후임자가 되어 향후 꽤 오랫동안 대법원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긴즈버그를 설득했으나, 그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갑자기 별세했고 후임자 자리는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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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 백악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왼쪽)과 앤서니 케네디 당시 연방대법관. 보수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임명된 케네디는 같은 공화당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82세 나이에 용퇴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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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도 브라이어와 비슷한 경우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케네디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82세 나이로 용퇴를 결심했다. 공화당 대통령에게 자신보다 젊은 보수 법률가를 대법관에 임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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