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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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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잘 익은 언어’들이 있는, 전주의 책 맛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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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잘익은언어들

한겨레

잘익은언어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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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맛집인가요?”

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혹여 택시라도 타면 으레 기사님들이 물어본다고 한다. 책방 이름 때문이다. ‘잘익은언어들’이라는 이름을 자칫 ‘잘 익은 연어들’로 오해해 종종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손님들은 웃으며 “네, 책 맛집으로 소문났더라고요”라고 말해준단다. 그래도 4년 전 골목 뒤편에 있던 책방은 작년에 나름 2차선 길가로 옮기고 전 재산 털어 지어 올린 버젓한 2층 건물이 되었다.

먹고 살 만해서 책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본이 넉넉해서 지어 올린 것도 아니다. 책방지기라는 직업을 통해 만난 새로운 인연이, 새로운 꿈틀거림이 전부를 걸게 만들었다. 주변 지인들은 ‘천직’을 만났다고 하지만 아직 6년 차밖에 안 된 나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군분투 중이며, 책방 운영의 현실에 맞서 계속 싸우는 중이다.

잘익은언어들은 ‘위로와 공감의 책방’이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는 문장이 담긴 책들을 큐레이션한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했던 터라 문학 외에도 글쓰기 책이나 특별한 그림책들도 공간 한가득이다. 책방지기 자체가 워낙 산만하게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책방 곳곳에 다양하게 큐레이션된 책들이 많다. 작을수록 뾰족하게 가야 한다는 마케팅의 원칙을 스스로 깨부수고, 원하는 대로 눈치 보지 않고 책방을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책방의 뾰족함은 단골손님들이 만들어주고 있다. 책방의 따뜻함과 편안함이 위로가 되고, 다양한 책 속에서 영감을 얻고, 용기를 얻어간다는 곳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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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익은언어들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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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익은언어들에서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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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익은언어들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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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만난 용기는 누군가의 삶에 동력이 되어 새로운 일을 하게 하고, 다른 세계에 진입하게 도와주니 작은 동네책방이 하는 일은 결코 작은 게 아닌 것이다. 우습지만 힘들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본다. 그저 내가 할 일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동네책방에 어울리는 좋은 책들을 열심히 선별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정함을 베푸는 일이다.

잘익은언어들은 ‘행사’가 많은 책방으로도 유명하다. 책방 초기엔 한 달에 서너건의 행사를 진행했으니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손님들이 나서서 도와주어 버텨냈던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책방을 걱정해주는 손님들 때문에 나는 책방 에피소드를 모아 ‘책방뎐’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책 속에서 나는 내 꿈을 ‘그림책 읽어주는 재밌는 할머니’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어느덧 침침해진 눈과 모자란 에너지로 책 읽어주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책방을 잘 운영하려면 체력이 실력임을 깨닫는다. 그래야 지친 영혼으로 책방 문을 힘겹게 열었을 누군가에게 책 한 권으로, 또는 한 문장으로 그 영혼을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을 테니. 오늘도 나는 웃는 낯으로 “어서 오세요”라고 씩씩하게 환대할 수 있도록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나를 돌볼 것이다. 그러니 전주에 오면 맛집이 아닌 책 맛집, 잘 익은 언어의 맛을 보러 오시기를 권한다.

글·사진 이지선 잘익은언어들 책방지기

잘익은언어들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거북바우로 68-1(인후동2가)

www.instagram.com/well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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