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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움직여야 보이는 것들[그림을 읽다/전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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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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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린 화가


인간의 생존은 이동을 전제로 한다. 이동의 기본 몸짓은 걷기이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에는 걷기가 이동의 수단이자 세상을 가늠하는 단위였다. 시간은 걷는 속도로 흘렀고, 그 속도로 사람들은 공간의 크기를 이해했다. 그 세계는 느렸지만 충만함이 있었다.

1878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발저는 매일 산책을 하며 길 위에서 만난 세밀한 이야기들을 모아 글을 썼다. 그의 글은 느리다. 만연체 문장, 과장된 묘사, 온갖 곁길을 다 누비는 듯한 서사…. 그의 글을 읽는 것은 그와 함께 걷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 그의 단편 소설 ‘산책’을 읽었다. 어느 화창한 날 주인공은 산책을 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거리로 나선다. 이웃을 만나고, 상점에 들르고, 세관원에게 세율을 조정해 달라고 읍소한다. 그러나 그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도 그를 따라 걸었다. 환한 햇빛 속에 나란히 서 있는 집 두 채를 바라보며 그는 행복해했고, 나는 그때 앤드루 와이어스가 1948년에 그린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떠올렸다.

발저와 와이어스에게는 ‘느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느리게 움직여야 보이는 것들을 한 사람은 글로 적었고, 또 한 사람은 그림으로 그렸다. 빗자루만 한 붓으로 거대한 화면을 채우는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성행하던 20세기 미국에서, 한물간 그림이라는 혹평을 감내하며 와이어스는 세필로 풀 한 잎,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밀하게 그렸다.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인 크리스티나는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휠체어의 사용을 거부했고, 자기 몸이 허락하는 속도로 삶을 유지했다. 산책을 나온 듯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잠시 멈춰 언덕 위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세상과 통하는 길은 그녀가 있는 곳과 반대쪽으로 향해 나 있지만 그녀는 다른 산책길을 선택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와이어스는 이 무성한 풀밭을 템페라 기법을 이용해 세밀하게 그렸다. 마치 그곳은 타인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 사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크리스티나는 절망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낮고 느리게 움직이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산책하고 있을 뿐이다. 와이어스의 페르소나인 크리스티나는, 자신만의 속도로 이동할 때 ‘살아있음’을 충만하게 느끼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발저도 그의 책에서, 산책이 성공한 도시인들의 여가 생활쯤으로 여겨지는 것에 반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산책은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아름답고 유용하고 쓸모 있는 일이라고. 내면의 길과 맞물려 이어진 산책로에서 보고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기억하고 글로 쓰는 것이야말로 작가를 살아있게 만든다고. 작가나 화가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생존을 위해 느린 산책이 필요하다.

전이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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