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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400년 넘은 느티나무와 지방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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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는 4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산림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보호수이다. 보호수는 역사적·학술 가치 등이 있는 고목, 거목, 희귀목 등으로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이다. 용문면 삼성리에 있는 느티나무는 높이 11m, 나무둘레 4m가 넘는 거목이다. 한여름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 느티나무 주변을 걷다 보면 나무가 뿜어내는 자연의 신선함은 기본이고, 과거 선조들이 이 나무를 심고 나무와 어우러져 살았던 삶의 궤적이 보이는 듯하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겪고 살아남은 흔적은 경건한 기운까지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고목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무를 둘러싼 내재된 갈등은, 갑자기 들이닥친 도로 포장공사 차량으로 인해 분출되었다. 주민 숙원사업으로 예산이 편성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주민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무를 보호하느라 아스팔트 포장이 안돼 있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는 주민들은 포장을 원하고 있고, 자연환경과 마을 역사의 보존을 원하는 주민들은 나무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 도로 포장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마을 임원들이 나무병원에 의뢰해 대안을 부랴부랴 만들었지만, 이 대안은 권한도 책임도 없다. 산림보호법상 보호수 관리는 지방행정관청이 하기 때문이다.

산림보호법 제13조 2항에 의하면 '시·도지사 또는 지방산림청장은 보호수를 현재 있는 장소에서 안전하게 관리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보호수 관리를 주민에게 위임했다는 규정은 어디 한 줄도 없다. 군청은 보호수 앞 도로 포장공사를 강행하기 전에 도로 포장이 보호수에 미칠 영향을 사전점검하고, 대책을 만들어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선행했어야 한다. 대안도 담당부서에서 직접 만들어야 했다. 역사와 자연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도 부재하지만, 처리 과정이 너무 안일하고 허술하다.

해외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역사가 보존된 도시, 파리를 예로 들고 싶다. 파리를 여행하고 놀란 점은 걸작 미술품이나 화려한 문화유산 때문만이 아니다. 과거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감탄했고 부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프랑스 화가인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1877년에 그린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를 보면 당시 더블린광장 거리는 현재 모습과 유사하다. 현재의 파리의 거리는 19세기에 완성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아파트들은 다 유적 같아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파리 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선조들의 혜안과 안목 덕분에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소중한 문화유산을 갖게 되었다.

나무 때문에 도로 포장 못한다고 나무를 원망하지 마시라. 나무는 아무런 죄가 없다. 인간의 필요로 나무는 심어졌고, 훼손되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 아니면 대대로 물려온 자연환경?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지만, 그 어떤 선택도 후손의 냉철한 평가를 받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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