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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홍콩 주권 반환 25년, 무너진 일국양제·가속화되는 중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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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권 반환 25주년을 앞둔 홍콩 거리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가 줄지어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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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련과 도전을 겪었지만 홍콩에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실천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성공을 거뒀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주권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홍콩의 현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인민일보는 29일자 1면 기사에서 “홍콩의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은 확고부동하다”며 “현재 홍콩은 법치와 상업 환경이 우수하며 사회는 조화로워지고 오랫동안 홍콩을 괴롭혔던 깊은 갈등은 효과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1일 홍콩이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는다. 150여년에 걸친 영국의 식민지배를 끝내고 1997년 중국에 귀속된 홍콩은 지난 25년간 숱한 풍파를 겪었다. 특히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이뤄진 국가보안법 제정과 선거제 개편은 홍콩에 정치·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은 홍콩이 혼란을 딛고 안정을 되찾았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는 홍콩의 자유가 축소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중국은 일국양제의 성공을 자평하지만 당초 약속한 50년의 시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아 이미 일국양제가 허물어졌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다.

■반환점 도는 일국양제

중국은 영국과 홍콩 반환에 합의한 1984년 중·영 공동선언을 통해 일국양제와 ‘항인치항(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의 원칙을 내세웠다. 1997년 7월1일 홍콩 주권 반환 행사에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은 본토와 분리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사법제도, 시민의 자유, 삶의 방식을 50년 동안 유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이후 10여 년간 홍콩은 실제로 어느 정도 본토와 분리된 사회·경제 체제를 보장받으며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또 홍콩 시민들은 그 속에서 홍콩의 민주화를 추동하려는 노력을 잃지 않았다.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와 2012년 ‘중국식 국민교육’ 도입 반대 시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던 2014년 민주화 시위(우산혁명) 등은 지난 25년 역사에서 그래도 홍콩의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홍콩은 2019년 격변기를 맞았다. 그해 6월 최대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6개월 넘게 이어진 시위 끝에 송환법은 철회됐지만 이듬해 중국의 역공이 시작됐다. 중국은 2020년 5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밀어붙여 홍콩 민주진영을 궤멸시켰다. 민주진영 인사 등 180여 명이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민주진영의 각종 단체와 정당, 노동조합은 줄줄이 해산됐다. 반중 성향 언론이 잇따라 폐간됐고, 시민들은 이전처럼 집회의 자유도 맘대로 누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홍콩 선거법 개정안은 홍콩인들에게서 최소한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마저 빼앗았다. ‘애국자치항(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의 원칙에 따라 민주진영 인사들의 공직 선거 출마가 제한되면서 지난해 12월 치러진 입법회(의회) 선거는 친중 후보들만의 잔치가 됐다.

■홍콩인들의 좌절과 엑소더스

일국양제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중국의 약속은 이미 공허해졌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은 최근 중국이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 보장 약속을 완전히 어겼다며 “1997년 이후 10년 혹은 그 이상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홍콩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홍콩보안법과 선거제 개편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제약하고 중·영 공동선언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홍콩인들도 달라진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회사에서 일하는 킨 리는 블룸버그통신에 “홍콩이 겪은 변화를 목격하면서 무력감을 느낀다”며 “이 도시가 독특함을 잃지 않길 바라지만 홍콩이 문화적으로 (중국에) 더 동질화되는 운명에서 벌어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콩은 동서양의 문화가 독특하게 어우러진 곳으로 과거 우리는 더 넓은 시야와 문화적 포용력을 갖고 있었다”며 “본토와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은 홍콩을 중국의 또 다른 도시로 만들 것이며 국제 금융의 관문 도시로서 홍콩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콩인들의 좌절감은 ‘엑소더스(탈출)’ 현상으로 이어진다. 홍콩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1년 동안에만 약 9만 명의 홍콩인이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2019년부터 최근까지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발급받은 홍콩인만 54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많은 홍콩인들이 언제든 홍콩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1997년 홍콩에서 태어난 켈빈 임은 “앞으로 25년 안에 홍콩은 크게 달라질 것이고 광둥어는 이제 주요 언어가 아닐 수도 있다”며 “이민자로서 차별을 겪더라도 몇 년 안에 홍콩을 영원히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 출신 첫 행정장관 취임, 절망 속 희망찾기

홍콩은 1일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과 함께 새로운 행정장관 취임식을 치른다. 제6대 홍콩 행정장관에 취임하는 존 리(李家超)는 경찰 출신으로 2019년 보안국장을 지내며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했던 인물이다. 첫 경찰 출신 행정수반으로 그의 취임 전부터 공안정국이 강화되고 홍콩의 중국화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는 선거 기간 홍콩 내 자체 보안법 제정을 통해 기존 홍콩보안법에 담기지 않은 내용을 보완할 뜻을 시사했다. 또 취임을 앞두고 언론에 보낸 성명에서 “홍콩의 개방성과 자유 그리고 세계적인 상호 연결성을 지키고 활용해야 한다”면서도 “국가 발전에 있어 홍콩과 국가의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과 행정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홍콩의 새 행정부에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처음이다.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그 자체로 가속화되고 있는 홍콩의 중국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지켜보는 홍콩인들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에밀리 라우(劉慧卿) 전 홍콩 민주당 주석은 AP통신에 “우리는 홍콩의 변화에 실망했지만 놀라지 않는다. 공산주의 정권을 상대할 때는 어떤 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홍콩의 미래에 집중하고 있고 아직은 이 도시가 본토와 구별된 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다는 걸 알지만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와 사회 정의 같은 핵심 가치를 위해 싸우는 것은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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