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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한우의 간신열전] [141] 공수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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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를 세웠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과도 같은 도리이다”라는 말은 ‘노자(老子)’에 나온다. 노자는 흔히 무위(無爲)를 강조한 은둔사상가로 여겨지지만, 실은 현실 속에서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로 읽히기도 한다. 즉 역설(逆說)의 가치를 강조한 사상가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현실과 무관치 않은 사상이라 하겠다.

노자는 또 공로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을 했다고 해서 자부하지 말고[不恃] 공로를 이루고서 그 자리에 남아 있지 말라. 무릇 남아 있지 않아야만 이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공자 쪽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논어’에서 공자가 수제자 안회(顏回)에게 네가 이루고자 하는 수양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자 “무벌선(無伐善) 무시로(無施勞)하는 경지”라고 말한다. 벌선(伐善)이란 자기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을 내세워 자랑하는 것이고, 시로(施勞)란 남을 위해 노고한 것을 떠벌리는 것이다. 공자는 그 사례로 노나라 대부 맹지반(孟之反)을 든다.

“맹지반은 자랑하지 않았다[不伐]. 패주하면서 후미에 처져 있다가[殿] 장차 도성 문을 들어오려 할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 감히 용감하여 뒤에 있었던 것이 아니요 말이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다.”

전(殿)이란 패전했을 때 후방을 맡는다는 뜻이다. 나름의 공로가 있다는 것인데 그마저 맹지반은 솔직히 털어놓았기에 공자는 그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승전했더라도 당연히 불벌(不伐)했을 것이다.

석패(惜敗)를 공로로 내세우며 당대표에 나서려는 이재명 의원, 지난 대선에서의 공로로 당내 세력을 키워가려는 장제원의원 모두 이 문제 앞에서 자기 점검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한다. 이제야 왜 ‘논어’ 맨 앞에 학이(學而), 유붕(有朋)에 이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아야 진정으로 군자가 아니겠는가!”가 나오는지 그 깊은 뜻을 알겠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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