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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2030 플라자] 젊은 인재들이 공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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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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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학생이 강사인 내게 말했다. “선생님 동기들이 이제는 선생님을 부러워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돈을 훨씬 많이 벌 것 아니에요?” 진심으로 들리는 그 말에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억대 연봉을 약속받고 가상화폐 거래소로 이직했다는 관계 부처 공무원들은 관가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얼마 전에는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 한 명도 강사를 하겠다며 공무원을 그만뒀다. 다른 후배 공무원 하나도 보수가 너무 낮다고, 대치동에서 수학 강사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공무원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오랜 기간 준비해 합격한 공무원을 그만두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이제는 다수가 스스로 퇴직한다. 조직 내부에서도 ‘또 한 명 그만두나 보다’ 하고 넘길 정도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수 인력은 공무원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20학번 이후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행정고시 재경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제 별종으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평생 일해도 집 하나 제대로 사기도 쉽지 않은 보수, 절반 이하로 줄어든 데다 그조차 은퇴 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공무원 연금, 그리고 정치권력의 지시에 잘못 대응하면 감옥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는데 공무원을 왜 하느냐는 논리다.

문과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은 돈을 잘 벌 수 있는 로스쿨을 가거나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한다. 현직에 있는 필자의 동기는, 상사들도 능력 있는 순서대로 퇴직하는 것 같다고, 앞으로 국·과장들은 민간으로 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니냐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겠다고는 하는데, 보수가 낮다 보니 평생 공무원으로 전문성을 살릴 사람보다는 국가 내부 정보를 파악한 후 민간에서 더 높은 연봉을 받을 목적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나는 중앙 부처 공무원들이 수행하는 업무 중 국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 업무가 많음을 몸소 느꼈다. 그렇기에 국가를 경쟁력 있게 운영하려면 유능한 인재가 공무원으로 일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급변하는 환경에 맞는 적실한 정책을 제시하고,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데 더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인재가 국가에 필요할 것 아닌가. 그래야 우리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의 공직 사회는 보상 체계가 너무 망가져서, 우수한 인재들이 공무원으로 일할 유인이 크게 줄었다. 더 큰 문제는 보상 체계가 새로 공무원으로 일할 청년들에게 특히 더 불리하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선배 공무원들이 받았던 세종시 특별 공급은 이제 신입 공무원들에게 해주지 않는다. 대신할 만한 어떠한 주거 대책도 없다. 공무원 연금을 개혁하면서 불이익은 모두 새 공무원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우리 세대에서 공무원을 하는 사람은 애국자거나, 철이 없거나, 집에 돈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시험에 합격해 이제 막 공무원으로 일하는 사무관은 “위 세대 공무원들의 고액 연금 충당에 쓰일 연금 납입금을 매달 볼 때마다 억울하다”고 했다.

관료 조직을 붕괴시키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2030 공무원에 대한 보상 시스템 정상화를 고민해야 한다. 9급 공무원은 최저 임금보다 낮은 야근 수당을 받으며 일한다. 이런 여건에서 국민에게 친절하고 적극적인 공무원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까.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생활을 유지할 수준 이상의 보상이 있어야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여건이 안 좋으면 공무원을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실제 능력 있는 공무원들은 그만두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으로서 국가 행정의 경험과 정보를 갖춘 사람이 중도 퇴직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최근 만난 청년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7급 공무원으로 1년 일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때 인맥이랑 정보로 정부 지원금 받아서 지금 사업하는 거죠. 공무원 월급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경험으로 국가 돈 빼먹으니 살기 좋네요. 차도 바꿨습니다.” 공직이 붕괴했을 때 나타날 사회 모습의 축소판으로 보였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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