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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환율 1300원대의 또 다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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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국발 통화 긴축 가속까지 겹치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 충격이 가시면서 2021년 초 달러당 1080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이 불과 1년 반 만에 1300원을 돌파한 것이다. 2020년 초 코로나의 영향으로 1296원까지 치솟은 적은 있지만, 1300원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경향신문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실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도세가 강화되고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가 지속되면서 국내 달러 수급이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본원적인 외자 공급 경로인 무역수지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지난 1~5월 무역수지가 누적 기준 78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한동안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축통화가 아닌 데다 중소 개방경제라는 속성 탓에 원화는 본래 대외 변수의 부침에 민감하다. 이른바 ‘고(高)베타 통화’다. 최근에는 외부요인 외에도 대내 달러 수급 부담도 커지고 있다. 자금 흐름 측면에서 기업과 연기금은 물론 개인 투자자들까지 가세하며 해외 투자가 추세적으로 늘고, 실물 차원의 경상거래에서도 무역적자로 달러 수급이 악화된 것이다. 환율 1300원대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위기의 전조가 아닐까 하는 일각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환율 급등을 곧바로 이런 위기의 악몽과 등치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공세나 지정학적 갈등 심화, 나아가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전 위기 때와 달리 국내 외화자금시장에서 달러 유동성 경색 현상은 뚜렷하지 않다. 대외신인도의 대리지표인 외평채 CDS프리미엄도 최근 두 배 이상 뛰며 51bp까지 올랐지만, 금융위기 고점(600bp) 수준보다 한참 낮고 코로나 충격 직후(56bp)보다도 낮다.

해외투자 확대 역시 당장에는 외화 유출 부담이 크지만, 실제로는 대외금융자산 증가를 통해 위기 시에 오히려 달러 유동성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한다. 2014년에야 흑자로 전환된 순대외금융자산은 이제 6600억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아직 기축통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점차 원화에 대해 시장 유동성 증대와 외환건전성 개선 등을 근거로 ‘준(準)안전통화’라는 평가를 내리는 전문가들도 늘고 있다. 아울러 무역적자 혹은 무역흑자 축소를 거시경제적으로는 국내 저축과 투자 간 불균형 완화라는 차원에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환율 불안만으로 우리 경제에 위기가 임박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1300원대 환율은 우리 경제를 총체적으로 뒤흔들었던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외에도 이른바 카드사태와 맞물린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2001~2002년 사이에 닷컴 버블 붕괴의 여파가 이어진 데다 엔저 심화와 맞물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선을 중심으로 표류했다. 이어 9·11테러와 이라크전쟁까지 맞물리는 와중에 2002~2003년 신용불량자 양산과 카드채 위기, LG카드 매각 등과 같은 경제적 충격이 가해졌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위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분별한 신용과잉으로 인해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쓰라린 기억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의 버블 붕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갈등의 확산, 나아가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풀려간 막대한 유동성의 후유증이 누적된 상황에서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를 앞두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요컨대 작금의 환율 불안기에 걱정해야 할 진짜 문제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개선된) 국내 외환건전성 혹은 대외건전성보다는 우리 경제 내부의 취약성이다. 역사적으로 통화위기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신용과잉에서 비롯되었다. 그저 환율 불안에 위기의 망령만 되뇌지 말고 우리 경제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철저히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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