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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그래서] 유난이라니, 지금 누군가는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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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흠뻑쇼’가 뭐라고, ‘이게 그렇게까지 난리 칠 일인가.’

아, 나는 그 유난이 반갑다. 진즉에 우리가 유난을 떨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늘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바꿔오지 않았나.

경향신문

이명희 사회에디터


이번 봄가뭄은 지독하고 길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에 사용되는 물이 수백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시끌벅적했다. ‘흠뻑쇼’는 이름처럼 관객이 물에 흠뻑 젖은 상태로 즐기는 공연이다. 2011년 시작돼 여름 시즌 콘서트로 자리 잡은 ‘흠뻑쇼’가 새삼스레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최악의 봄가뭄 때문이다. 싸이가 한 방송에서 ‘물폭탄’ 쇼를 한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지난달 싸이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코로나 사태로 3년 만에 열리게 된 흠뻑쇼 소식을 전하며 “(흠뻑쇼에는) 다 마실 수 있는 물을 쓴다. 콘서트 회당 300t 정도 든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나도 봤다. 싸이의 유쾌한 입담에 언젠가 콘서트에 가서 힘껏 ‘떼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식수를 300t이나 쓴다는 얘기엔 ‘그럴 리가…’ 하긴 했다.

흠뻑쇼가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 것은 이 방송이 나간 직후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극심한 가뭄에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는 게 부적절하단 지적과 함께 ‘환경을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콘서트 한 번에 300t의 식수를 쓴다는 것이 나만 불편한 건 아니었나 보다. 그런 와중에 지난 12일 배우 이엘이 “워터밤 콘서트 물 300t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쓴 트윗글이 흠뻑쇼에 대한 비판 여론에 불을 댕겼다. 물론 반박도 만만찮았다. 한 작가가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자’의 위선이라고 맞받으며 찬반으로 의견이 갈려 논쟁이 뜨거워졌다.

‘흠뻑쇼’가 각성시킨 환경문제

여러 논란 속에 물을 뿌리는 공연 특성상 감염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방역당국의 우려까지 나온 흠뻑쇼는 예정대로 다음달 9일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수원, 부산, 대구, 강릉, 여수 등 7개 도시에서 열린다. 이대로라면 공연을 위해 약 2000t의 물이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흠뻑쇼에 가야 해, 말아야 해?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된다. 매진이니까.

다행히 기다리던 장마가 시작되면서 봄가뭄이 해갈돼 공방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흠뻑쇼 논란을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그렇다면 2000t의 물을 아끼면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은 억지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흠뻑쇼에만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라, 유난스럽지 못한 우리가 그동안 안테나를 세우지 않았을 뿐”이라고.

흠뻑쇼를 두고 거센 논쟁이 벌어진 것은 기후위기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둔감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뭄으로 인한 물부족을 안타까워하며 환경을 생각하자는 이들의 주장이 졸지에 가수 한 명을 ‘무개념 환경 파괴범’으로 몰고, 본인의 도덕적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툭 튀어 나온 누군가의 한마디가 그간 당연시하며 외면하고 있던 문제를 온 사회에 각성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논쟁은 SNS에서 휘발돼 버리고 마는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현재성을 띤다. 그래서 언론이 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며 논쟁을 키웠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널리즘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적 삶의 모든 사안을 다루는 망명정부다.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뉴스의 시대>). 나보다 훌륭한 알랭드 보통의 얘기다.

공연예술계는 이제라도 환경에 최대한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싸이라면 대량의 물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스태프가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한 공연을 당장 그만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공연예술계도 탄소저감 발맞춰야

해외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연 중 배출되는 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아티스트가 직접 나서 기후위기 대응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는 탄소배출 문제를 언급하며 2019년 지속 가능한 공연 방식을 찾을 때까지 투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는데, 탄소 발생량을 이전 투어의 50%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올해 투어를 재개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릴케의 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어느 것 하나도 저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다. 부디 냉소를 거두자.

이명희 사회에디터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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