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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내년 최저임금 5% 오른 9620원…자영업자·中企 "차라리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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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기한의 마지막 날인 29일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오른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정부세종청사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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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9620원(5%)으로 인상되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인상폭이 예상보다 커 고물가·고금리로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한계 상황에 다다른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으로 인한 일자리 증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최임위는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의 최저임금 제시안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공익위원이 제시한 9620원을 표결에 부쳤다. 그동안 사용자위원 측은 고물가·고금리 국면에서 불어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부담과 인건비 지불 능력 등을 감안해 동결 혹은 1%대 인상을 주장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인상률만 놓고 보면 사용자위원 측이 원하던 수준보다 3배가량 더 오른 셈이다.

공익위원들의 제시안은 최근 6%대까지 거론되며 연일 치솟고 있는 물가를 감안한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5년간(2018~2022년) 최저임금 인상률(41.6%)은 이미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9.7%)의 4배를 웃돌고 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더라도 한국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62.6%로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4개국에 비해 최대 31%포인트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그동안 수년째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한 데다, 최근 전기료·가스비 등 고정비용도 오름 추세인 점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 인상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구로동에서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모씨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현재 최저임금이 9000원대이지만 고용주들이 체감하는 최저임금은 이미 1만원을 넘어섰다"며 "연간 대체휴무일이 10여 일에 이르고 주휴수당 부담까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면서 "임대료도 오르고 고정비용이 상승 추세여서 인건비 상승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근로자들은 시급이 오르면 근로시간을 그만큼 줄여 자신들이 설정한 임금 총액에 이를 때까지만 일하려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고용주들의 근로시간만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금천구에서 편의점 이마트24를 운영하고 있는 이 모씨는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시점에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에게 가혹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2년여간 코로나19 장기화로 타격을 입고 최근 들어선 식자재 가격 폭등, 금리 인상 등으로 부담이 커진 외식업계도 내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될 경우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외식업종에서 인건비 비중은 20% 이상을 차지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에 시달리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경영 여건은 이미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약 668조원으로, 전년 말 대비 32조원 증가했다. 특히 전체 대출 증가액의 약 77%(24조6000억원)가 중소기업(소상공인 포함) 대출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올해 1분기 전체 기업이 임금·이자 지급, 원재료 매입 등을 목적으로 실행한 단기 대출 잔액은 총 972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2조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도 445조5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8조8000억원 불었다.

성남 분당구에서 분식점을 운영 중인 A씨는 "식자재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열심히 팔아도 남는 게 거의 없는 상황인데 인건비 부담까지 커지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것"이라며 "폐업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혹시라도 손님이 줄어들까봐 음식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다"며 "몇 달 전부터 가게를 혼자 운영하고 있는 지인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12개 단체로 이뤄진 '코로나19 피해 자영업 총연합'의 오호석 공동대표는 "이미 그동안 큰 폭으로 인상된 최저임금 때문에 실제로 혼자서 또는 직원 1~2명 정도를 두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벌면서 겨우겨우 사업을 끌고 가고 있는 업주들이 많다"며 "이번만큼은 최저임금이 최소한 동결되길 바랐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저임금 심의는 노사가 각각 제시하는 요구안의 격차를 좁혀 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노사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익위원이 격차를 대폭 줄이는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공익위원이 중재안을 제시해 표결에 들어간다.

이날 최임위는 오후 3시에 시작해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장시간 이뤄졌다. 당초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측은 세 차례에 걸친 수정 끝에 최종 제시안으로 각각 1만80원과 9330원을 제시했으나 이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캐스팅보터(casting voter)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수준(중재안)을 제시한 뒤 표결이 진행됐다.

[김희래 기자 / 송경은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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