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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월 28만원 버는 저소득자 건보료 4000원 올린다… 건보료 개편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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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새 건보료 부과 방식 적용
지역가입자 재산→소득 중심으로
저소득자 최저보험료 인상·대상도 확대
피부양자 기준 강화에도 무임승차 여전
한국일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시내 국민건강보험공단 앞 신호등에 켜진 빨간불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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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자영업자·일용직 등)의 부담을 덜고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더 내도록 9월부터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한다. 그러나 정부 취지와 달리 한 달에 28만 원 이하를 버는 저소득자의 월 보험료가 4,000원 오른다.

여기에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피부양자(배우자, 부모, 자녀) 기준이 강화돼 탈락하는 저소득자도 대거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내리기 위해 저소득층에 짐을 떠넘긴 것으로 볼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건보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 하위 법령 개정안을 30일부터 7월 27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2017년 3월 국회 합의에 따라 2018년 7월 1단계 개편이 시행돼 지역가입자의 부담이 완화된 바 있다.

보험료 재산 비중 낮춰…지역가입자 65% 3만6000원 인하


2단계 개편의 핵심은 건보료 부과 기준을 재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경제적 능력이 있는 국민이 더 부담하도록 바꾼 점이다. 지역가입자는 연 수입에 따라 부과하는 '소득보험료'와 부동산 등 재산에 매기는 '재산보험료'를 낸다. 반면 직장가입자는 월 소득에 따라 건보료가 책정돼 두 그룹 간 형평성 문제는 오랜 과제였다.

이번 개편으로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 비중을 낮추고 소득보험료를 높이면서 전체 지역가입자(859만 가구)의 65%인 561만 가구의 월평균 보험료가 기존 15만 원에서 11만4,000원으로 내려간다. 정부는 2.7%인 23만 가구만 보험료가 인상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보험료 4000만 원 이상만 적용, 93%는 안 낸다

한국일보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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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인 사업자, 일용노동자, 특수고용직, 은퇴자 등 지역가입자가 소유한 주택·토지 등 재산보험료에 대한 공제액이 늘어난다. 지금까진 재산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500만~1,350만 원 공제)했는데, 9월부터는 재산과표 5,000만 원(시가 1억2,000만 원)이 일괄 공제된다. 예를 들어 시가 3억6,000만 원(재산과표 1억5,000만 원)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억5,000만 원에서 5,000만 원을 뺀 1억 원에만 보험료(월 9만120원)가 부과된다. 이에 따라 재산보험료를 내는 지역가입자의 37.1%가 9월부터 납부 대상에서 빠지고, 납부 가구 수는 523만 가구에서 329만 가구로 줄어든다.

배기량 1,600㏄ 이상 차량에 부과하던 자동차 보험료는 4,000만 원 이상 차량에만 부과한다. 예를 들어 2022년형 제네시스 G90은 부과 대상이지만, 2022년형 아반떼·코나 운전자는 9월부터 내지 않아도 된다. 이번 조치로 부과 대상 차량은 179만 대에서 12만 대로 줄어든다.

소득보험료는 '등급제'에서 '정률제'로 바뀐다. 기존에는 소득에 따라 97개 등급으로 나눠 책정했는데, 앞으로는 평균 월 소득에 보험료율을 곱해 계산한다. 보험료율은 직장가입자와 같은 6.99%가 적용된다.

저소득자 부담 느는데 "숫자 적다"는 복지부


그러나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자에게는 가혹한 개편이 됐다. 이들의 보험료를 올린 건 물론 부과 대상도 확대했다. 정부는 직장·지역가입자 간 형평성을 이유로 지역가입자의 최저보험료를 월 4,084원 인상했다. 대상은 연 소득 100만 원 이하에서 336만 원(월 소득 28만 원) 이하로 넓혔다. 앞으로 저소득 242만 가구(290만 명)는 직장가입자 최저보험료와 같은 1만9,500원(현행 1만4,650원)을 내야 한다. 다만 최근 급격한 물가 인상 상황을 고려해 2년간 인상분 전액을 경감해 주기로 했다. 그 후 2년간은 50%를 깎아 준다.

최종균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체 지역가입자의 32%인 275만 가구는 건보료가 현재와 같고, 2.7%만 2만 원 정도 오른다"며 "(최저보험료 인상 대상자들은) 국가 지원을 받는 의료급여대상자, 차상위계층보다 부담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98%는 보험료 변동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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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일 서울 시내 국민건강보험공단 한 지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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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가입자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됐다. 경제 능력이 있음에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례가 없도록 피부양자 제외 기준을 연 소득 3,400만 원 초과에서 2,000만 원 초과로 강화했다. 이에 따라 피부양자 27만3,000명이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당초 59만 명 전환을 목표로 잡았지만, 최근 주택 가격 상승을 이유로 재산 기준을 조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절반 정도만 전환됐다. 피부양자 기준은 소득과 재산으로 결정한다.

문제는 연수입 2,000만 원대의 저소득자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점이다. 현수엽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이에 대해 "피부양자 탈락자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고, 고소득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4년간 한시적으로 보험료 일부를 경감해 줄 방침이다. 1년차에는 80% 경감한 뒤 매년 20%씩 비율을 낮춰 4년차에는 20%만 깎아주기로 했다.

직장인들의 건보료는 큰 변화가 없다. 직장가입자의 98%는 현재 보험료가 유지된다. 다만 월급 외 부수입이 2,000만 원을 초과하는 45만 명(직장가입자의 약 2%)은 월 보험료가 평균 5만1,000원 인상된다.

정부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 지역가입자가 보험료 납부를 회피하지 못하게 지역가입자도 '보험료 조정 사후정산제도'를 적용한다. 직장가입자는 매년 4월 보험료를 정산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정산 제도가 없는 탓에 직장인의 반감이 컸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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