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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후 Talk] 늪에 빠진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번엔 서울시 중재안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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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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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중단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4개 건설사로 구성된 시공단이 공사를 중단한 지도 두달이 넘었습니다.

그사이 조합은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시는 현장 점검에 나서 중재안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시공단과 조합의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조합이 시공단의 보증으로 대출받은 사업비 7000 억원은 8월이면 만기가 도래합니다. 대출은행에서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조합이 갚지 못하면 시공단이 대신 갚은 뒤 조합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게 됩니다.

조합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2020년 시공단과 전 조합이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입니다. 당시 공사비가 2조 6708억원에서 3조 2294억원으로 약 6천 억원 늘었는데 조합은 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원이 검증한 공사비 검증보고서를 총회에서 공개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만큼 어느 쪽이 옳은지 따지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제력은 없지만 올해초 서울시가 중재했던 내용은 어느 쪽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 올해초 중재안 제시...조합은 계약 무효 소송 제기

서울시는 올해초 재건축 재개발에 잔뼈가 굵은 코디네이터 3명을 투입해 양측의 의견을 들어보고 중재에 나섰습니다. 중재 내용을 보면 조합은 공사비 검증보고서를 총회에서 공개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공사비 검증보고서를 총회에서 공개한 뒤, 더 나아가 공사비 증액을 의결받은 뒤에야 비로소 공사변경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됨"

서울시는 또 최종적으로 입주 지연 등 조합원의 피해를 최소화기 위해 조합과 시공사 합의하에 20년 변경계약 내용에 대해 재검증 및 변경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내용을 좀 더 취재해봤더니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비 검증 결과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단 사실이 계약이 무효가 될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한 게 맞다"면서 "시공사-조합간 원래 맺은 계약 자체는 인정하고, 그 이후에 법적 판단을 받아보란 게 서울시의 조정 의견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조합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라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둔촌주공, 2년 넘게 일반 분양 안해...시공사, 1조 7000억 투입해 외상공사

아주 기본적인 내용부터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재건축 아파트는 철거를 하고 일반 분양을 합니다. 그리고 일반 분양으로 들어온 대금을 공사기 진척되는 속도에 맞춰 공사비로 지급합니다. 그런데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시공단이 공사를 시작한지 2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도 일반분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 분양가가 조합이 예상하는 것보다 낮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시공단은 1조 7000억원의 자기자금을 투입해 외상 공사를 해 왔습니다. 조합은 줘야 할 돈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2020년 전 조합과 시공단이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입니다.일반적으로 건설사는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조합과 짬짜미로 공사비를 은근슬쩍 올리곤 합니다.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때문에 현재의 조합이 전 조합과 시공단이 근거도 없이 공사비를 올려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지적을 해도 시공단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증액 계약을 제3의 기구인 한국부동산원에서 검증을 받았다는 점에서 근거없는 증액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한국 부동산원의 검증을 통해 적어도 금액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셈입니다. 또한 시공단이 공사 중단하기 직전, 조합이 시공단이 보낸 서류에도 도급 공사비를 3조 2천억원으로 하되 검증을 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 취재진이 조합 자문위원에게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 총액이 2020년 증액 계약때와 비슷한 데 왜 굳이 계약을 다시 체결하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자문위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재 고급화와 명품 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공단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렴한 자재들을 쓸 수 있다는 지적도 배척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일정 품질 이상의 자재를 쓸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조합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합과 시공단이 계약을 맺을 때는 이런 점 등을 기재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 부분이 미흡하다면 보완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특정업체 선정 요구한 조합...고급화 차원? 이권개입?

그러나 TV조선이 취재를 하면서 확인한 것은 일정 품질 이상의 자재를 써 줄 것을 요청하는 조합의 요구라기보다는 특정업체를 납품업체로 선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대다수였습니다. 특정 대기업 제품으로 납품업체를 교체해 달라는 요구부터, 특정 스펙이 있는 제품을 쓰라는 요구(이 경우에는 한 업체만 이 스펙을 가진 제품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어서 특정업체 선정하는 효과가 있음. 일명 '스펙 박기'로 불림), 또한 품질 인증도 없는 제품을 직접 현장에서 설치해서 품질을 확인하자는 요구까지 다양했습니다.

층간 차음제는 가장 심각했습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정부는 품질 인증이 된 제품만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합은 품질 인증을 받지 못한 업체를 회의에 참석시키고는, 이 업체 제품을 설치해 직접 품질을 체크해 보자고 요구했습니다. 만약에 조합 요구대로 한다면 향후 층간 소음 문제가 발생하면 그 하자 책임은 모두 시공단이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증이 되지 않은 제품을 쓸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이 업체를 회의에 참석시킨 것은 조합의 핵심 인사였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이 핵심 인사에게 어떻게 이 업체를 찾았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을 보고 알아냈고, 조합에 기술 자문위원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업체는 총매출 20억 이하에 직원도 5명 있는 업체였습니다. 층간 차음제에 대한 품질 인증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요.

서울시는 2011년 정비사업 표준계약서 양식을 만들었고, 그 계약서에는 조합의 ‘이권개입’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조합의 이권개입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이 시공사에게 특정 업체를 추천하거나 입찰에 참여시키라고 요구한다면 이권 개입이 맞을 것 같다”며 “시공사 측에서 이권 개입이나 청탁 증거 확보해뒀다면 사인간 계약 파기 사유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는 서울시의 설명이었습니다.

■서울시, 지방선거 직전 2차 중재안 제시...“계약 유무효 따지지 말고 공사비 재검증”

이후 서울시는 둔춘주공 공사가 중단되고, 조합의 특정업체 변경 요구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현장 점검을 나갔고, 다시 중재에 나섰습니다.

취재진은 강제력은 없지만 이번에는 서울시가 좀 더 강력한 중재안을 내놓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6월 1일 지방선거 직전에 나온 서울시 중재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2020년 6월 25일 변경계약’의 유·무효에 대해 더는 논하지 않고, 변경계약에 따라 책정된 공사비 3조2천억원에 대해 기존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부동산원에 재검증을 신청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계약을 변경한다.

2.시공단은 조합의 마감재 고급화 및 도급제 변경 요구를 수용하고 30일 내로 공사를 재개한다.

3.시공단이 요구하는 분양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손실, 품질확보를 위한 적정 공사 기간 연장, 공사중단·재개 등에 따른 손실, 조합의 마감재 고급화 요구에 따른 변경을 조합이 수용하되 적정 범위 결정을 위해 토지주택공사 등(SH·LH, 사업대행자)에 전권을 위임하는 사항을 총회 의결을 거쳐 결정하고,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사업대행자의 판단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3번을 제외하고는 공사 중단 직전 조합이 시공단에 제안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또한 올해초에 서울시가 내놨던 중재안 기존의 공사비 증액 계약이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재검증을 거쳐 계약을 변경하라는 내용을 뒤집은 것입니다. 여기다 조합이 제기한 계약 무효 소송을 철회하라는 내용이 있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서울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서 조합측에 다소 유리한 중재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공단은 중재안 수용 불가 방침을 통보했고, 서울시는 다시 중재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보호해야 할 것은 조합인가? 조합원인가?

서울시 입장에서는 둔춘주공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서울시민의 일원입니다. 시공단은 자금력을 갖춘 강자입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강자를 통제할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조합원들의 편에 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보호해야 할 것은 조합원이지 조합은 아닙니다. 생업에 바쁜 둔촌주공 조합원 5000여명은 조합에 자신들의 권리를 일임하고, 조합이 잘해 주기만을 바라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조합원들의 바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것을 떠나 명품 단지를 만들겠다면서 공사비는 지급하지 않고, 공기를 늦추면서까지 고급화를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조합은 분양가상한제가 다소 풀리면 분양가를 올려 조합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 분양가상한제 완화에도 분양가가 그리 크게 오를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에 비해 원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는 더 크게 오를 개연성이 높습니다. 벌써부터 400만원대 후반이었던 공사비가 이제는 500만원 중반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하고, 사업진행 상황을 가감없이 설명하고 있는지를 서울시는 감시하고 감독해야 합니다. 시공단이 부실 공사를 하는지, 자금력을 내세워 조합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지도 봐야 합니다. 서울시가 또다시 어설픈 중재안을 제시해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형영 기자, 임유진 기자, 김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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