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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월북 논란 규명할 ‘SI 첩보’, 윤 대통령이 공개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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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피살된 공무원 월북 정보 담겼다지만

공개 땐 최대 6개월 대북정보 공백

미국 정보자산 결합…항의 전례도


한겨레

지난 2020년 9월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서 당시 윤성현 해경 수사정보국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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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피살된 이대준씨가 월북했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유족들의 강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관심을 보였으며, 새 정부 출범 뒤 해양경찰청은 수사 결과를 번복했다. 사건이 발생한 2020년 9월 문재인 정부는 당시 북한군의 무선통신 내용을 감청한 ‘에스아이(SI. Special Intelligence. 특수정보)’를 근거로 ‘이씨가 월북했다’고 판단했다.

에스아이 공개를 촉구했던 국민의힘은 이제 사건 당시 청와대 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대통령기록물) 공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건을 보고받고 이씨가 숨질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밝히겠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물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열람할 수 있다.

1일 감청정보 1300시간 분량…미군 정보 결합해야 시너지


에스아이는 국회 동의 없이 윤 대통령이 공개할 수 있지만 윤 대통령은 공개에 부정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출근길에 에스아이 관련 질문을 받고 “국민에게 그냥 공개하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걸 공개하라는 주장 자체는 받아들여지기가 어렵지 않나 싶은데”라고 답했다. 평소 튼튼한 안보와 한미동맹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 처지에서 에스아이 공개는 선택하기 무척 어려운 결정이다. 안보 약화와 미국의 반대라는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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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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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아이를 공개하면 먼저 우리 군의 대북 감청 수단과 능력이 드러나는 군사보안 문제가 생긴다. 대북 감청부대는 24시간 북한 전역의 무선통신을 수집한다. 북한군 전체 통신의 75%를 감청한다고 한다. 고성능 컴퓨터가 북한 전역에서 나오는 수많은 전파를 탐지해 주파수를 파악하면 정보요원들이 통신 내용을 검토해 시시콜콜한 내용은 버리고 주목할 내용을 찾아낸다. 이 과정을 거쳐 하루 약 1300시간 분량의 무선통신을 추려낸다고 한다. 모든 나라 군대는 적의 감청에 대비해 일정한 주기로 통신 주파수를 바꾸고, 통신할 때도 일상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전에 약속된 ‘음어’로 교신한다. 이 때문에 북한군 감청 내용은 일반인은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쉽게 알기 어렵다.

서해 공무원 피살 당시 북한 상부에서 ‘762로 하라'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군이 사용하는 에이케이(AK) 소총의 탄환 구경이 7.62mm라서 ‘762’는 북한군 7.62㎜ 소총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잡음이 섞인 북한군 무선 통선 내용 중 ‘762’란 말도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762가 북한군 7.62㎜ 소총탄을 뜻한다는 것은 북한군 무기체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알기 어렵다.

감청부대는 수십년 축적해온 노하우를 이용해 북한군 통신의 암호와 음어를 풀어 통신 내용을 복원한다. 북한군 교신 내용이 감청으로 수집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군은 교신 주파수와 암호 체계를 모두 바꿀 가능성이 크다. 에스아이를 공개하면 감청부대의 각종 노하우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대북 감청부대가 이를 다시 파악하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동안 대북 정보 수집은 공백 상태가 된다. 지금처럼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대북정보 공백은 윤석열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다.

감청부대는 감청뿐만 아니라 영상정보가 있어야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2020년 9월22일 오후에 감청부대 실무자가 피살 공무원이 발견된 북한 바다 근처 북한군 무선통신에서 특이한 점을 인지하더라도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근처에 북한 군함 등이 있음을 확인해주는 위성사진이나 정찰기 사진이 나오면 분석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감청부대 분석관은 북한 해군의 작전 상황과 연관된 것으로 판단하고 쏟아지는 감청 첩보를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조각조각 모인 단편적인 대북 첩보를 모아서 종합 판단해 정보로 만드는 과정에선 한국군뿐만 아니라 미군 정보 자산(위성사진, 정찰기 사진, 감청 장비)에서 나온 첩보들도 참고하게 된다.

대북 감청 ‘777부대’ 미군이 창설…지금도 한·미 협업


한국 대북 감청부대인 777부대는 ‘스리 세븐 부대’로 불린다. 777부대는 애초 미군이 주도해 만든 부대였다. 현재도 대북 감청업무는 한·미가 같이 근무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허가 없이 한국이 에스아이를 함부로 공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한국이 에스아이를 공개해 미국과 심각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2009년 1월,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징후 첩보를 한국에 통보했다. 미국 정보당국이 미국 위성사진과 감청 정보를 바탕으로 파악한 첩보였다. 그해 2월 한국 당국자들이 미국한테 받은 첩보에 담긴 북한 미사일 크기와 발사 예정 장소 등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흘려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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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만들어진 탄도탄 작전통제소는 한반도 전구 내 탄도탄 방어작전을 총괄하는 지휘통제 기구이다. 이 기구가 없을 때는 한국군은 미군이 알려주기 전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쏜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화시스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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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한미군 고위 당국자와 미국 국무부 당국자는 한국군과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경고했다. 미국은 그해 2월 중순부터 한동안 한국에게 주는 위성사진, 감청 첩보를 대폭 줄였다. 당시 미국은 자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운용하는 정보자산으로 수집한 대북정보를 왜 한국이 마음대로 공개하느냐고 문제 삼았다. 이보다 앞선 2007년 6월에도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주한미군이 제공한 미사일 궤적 정보 등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자 미국이 항의하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의 이런 정보 공개를 심각한 ‘정보 재산권’ 침해로 본다.

합참이 지금처럼 북한 미사일 발사를 실시간 탐지하고 2시간 뒤 비행거리, 고도 등을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군 탄도탄 작전통제소(KTMO-Cell)를 만든 2014년 이후다. 2014년 이전에는 한국군은 미군이 알려주기 전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쏜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진상 규명은 어려워지고 끝없는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군사정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정보의 정치화’는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안보의 밑돌인 국가 정보역량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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