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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의 중학교 동창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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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50년이란 세월은 짝꿍이었어도 길에서 스쳐도 지나칠 만큼 변했다. 하지만 그의 주름살이 내 주름살이요, 그의 면상이 곧 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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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딱 반세기다. 모두가 한결같이 했던 말은 "세월 참 빠르다"였다.

50년이란 세월을 생각한다.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 그 시간, 같은 역에 내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한 사람의 50년간 변모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끝 모를 대화 속에는 한 인간뿐이 아닌, 한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축약돼 있기도 했다.

지난 주말 중학교 동창회에 정확히 50년 만에 처음으로 갔다. 졸업 50주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경향 각지의 졸업생에게 연락한 집행부의 열성에 응답하고 싶었다. 대전 교외의 계곡 '○○가든'에서 '반갑다 친구야'라는 대형 플래카드 아래 졸업생의 10분의 1쯤 되는 50명이나 자리를 함께했다.

10대 중반, 우리는 소년이었을까, 청년이었을까. 미리 빛바랜 졸업앨범을 꺼내 까까머리 얼굴과 이름을 보며 예습을 하고 갔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공식적인 동창회란 게 없었다. 나는 불행히도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고교 평준화 도입 직전의 입시 세대다. 이번에 모인 대전중학교 22회 동창들은 나의 경우처럼 서울이나 지방의 다른 고교로 진학한 아이들이 많았다.

중학교 동창은 애매하다. 똑같이 깨벗은 천둥벌거숭이였던 초등학교 동창은 그저 편하고 만만하다. 그런데 그 시절 기억은 희미한 풍경화다. 반면 고등학교 동창끼리는 공유하는 스토리가 많아 생생하다. 질풍노도 청춘의 첫 페이지를,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함께 겪었다. 그래서 초중고 학연 중에는 고교 동창에 평생 친구가, 서로의 마음을 아는 지음이 많다.

기온은 높았지만 산바람이 계곡을 따라 불었다. 기억회로에 공백으로 남은 14~16세 시절 3년이 부활해 삶의 궤적을 맞추어준 기분이었다. '사랑의 매질'을 하던 선생님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이다. 우리는 동창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바로 계산서, 영수증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추억들이 오고 갔다. 누가 달리기를 잘했는지, 누가 공부를 더 잘했는지, 어느 놈끼리 짱을 놓고 한판 붙어 정학을 받았는지, 여선생님에게 어떤 수법으로 짓궂은 장난을 쳤는지, 누가 연애편지를 대필했는지, '닥터 지바고'인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지 단체관람한 영화를 놓고 기억력을 다투었다.

모임 마지막에 나눠 준 악보를 보고 교가를 불렀는데 주춤주춤했다. '태평양 품안에…'로 시작해 '누리에 빛나거라, 영원할 손 그 이름'으로 끝났다. 교훈은 남자 중학교였는데 '순결, 진실, 용기'였다.

돌아오는 길에 여럿이 단톡방에 후기를 남겼다.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 젊은 시절에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지나간 시절이 되었네. 이번 모임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우리의 삶에 또 다른 의미가 되기를."

"국민교육헌장을 딸딸딸 외우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혼났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단체로 태극기를 들고 나갔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순진함으로 돌아가고 싶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네. 머리숱이 빠졌어도 모두 자랑스럽게 살아왔음을 격려하네!"

그래, 다들 잘 살아 있었구나. 씩씩하게 살아왔구나. 우리는 '빠삐용' 건배사를 소리 높여 외치며 다음을 기약했다.
한국일보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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