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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김재형 대법관 "명예훼손죄, 법적 책임 범위 좁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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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서 '자율과 공정' 강연…문장력 비결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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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대법관은 28일 오전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열린 '자율과 공정'을 주제로 한 초청 강연회에서 위헌성 논란의 중심인 명예훼손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우는 범위를 좁히되 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명백히 넘는 표현에 더욱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밝혔다. /대검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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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김재형 대법관이 위헌성 논란의 중심인 명예훼손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우는 범위를 좁히되 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명백히 넘는 표현에 더욱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관은 28일 오전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열린 '자율과 공정'을 주제로 한 초청 강연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대법관은 "명예훼손죄는 명예를 중요시 한 귀족 사회였던 영국에서 시작됐으나 영국도 2010년 명예훼손죄를 아예 폐지했다. 미국은 처벌 규정이 있지만 많은 주에서 처벌하지 않고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고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겠지만 (명예훼손 행위를) 얼마큼 형사 처벌할지는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생활 침해와 혐오 표현이라는 큰 사회적 문제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민법은 대응하지 못하고 (형법으로) 과하게 처벌함으로써 명예훼손에 대한 법 적용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법적 책임을 지우는 범위를 좁히되 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명백히 넘는 표현은 더욱 엄정하게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제언했다. 강연 대상인 검사와 수사관들을 향해서도 "법원 판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법무부와 검찰이 우리 사회 시스템을 어느 쪽으로 가져갈지 깊이 생각해서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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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대법관이 28일 오전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열린 '자율과 공정'을 주제로 한 초청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대검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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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법관은 2017년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주심을 맡아 피해 직원들을 구제한 바 있다. 르노삼성은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 피해를 당한 직원과 그 직원을 도와준 동료에게 불리한 인사 조치를 했다. 이에 피해 직원들은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1·2심 법원은 가해자의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회사의 불법 인사 조치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뒤집고 원고 전부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날 강연회에서 김 대법관은 "성희롱 피해자를 도와준 동료를 징계한 것까지 민법상 불법행위로 볼 수 있을지 아주 어려운 문제였는데, 결국 (불법 행위로) 인정했다"며 "선고를 할 때 법정이 가득 찼었는데 맨 오른쪽 앞에 여성 6명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던 여성이 울고 있어서 '이 사건 원고겠구나' 싶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직장내 성희롱 행위를 공론화한 이른바 '서울대 신 교수 사건' 판결이 나온 지 20년이 되는 시점에 유의미한 관련 판례를 쓰기 위해 연구관에게 보고를 재촉했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김 대법관은 "나중에 연구관에게 어떤 사건이 가장 생각나냐고 물으니 이 사건을 꼽더라. '이 사건 하려고 법관이 됐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법관은 대검 직원으로부터 '어떻게 핵심적인 문장을 쓰시냐'는 질문을 받고 평소 일기를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기를 쓰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내용을 자유롭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글 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법률가도 스스로 생각한 걸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을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민법개정위원을 지낸 김 대법관은 "입법에 참여하며 많은 초안을 작성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법조문을 구구절절 쓸 수 없으니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했다"고도 했다.

9월 퇴임을 앞둔 김 대법관은 '새로운 판례 생성' 문제에 대해 "법관은 자신의 판단이 이성에 비춰 올바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정당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일관성 없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법관이 정반대 논리에 기대면 정당성이 무너진다. 다른 논리를 채택할 때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뒤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1992년 서울서부지법 판사 생활을 하다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자리를 옮겼고 1995년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1년 동안 교수를 지내면서 민사법을 연구하고 강의해와 '민법 권위자'로 평가받았다. 2016년 9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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