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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중국 14억의 뜨거워진 ‘애국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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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 싸구려 이미지로 중국인들에게도 외면 받았던 ‘메이드 인 차이나’는 이제는 중국인들에게 자부심을 드러내는 통로가 됐다. 그들 스스로 “나는 중국인이다”를 외치며 ‘메이드 인 차이나’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중심에는 중국어로 애국 소비를 의미하는 ‘궈차오(國潮)’ 열풍이 자리 잡고 있다. 궈차오는 중국 문화를 의미하는 궈(國)와 유행, 트렌드를 의미하는 차오류(潮流)의 차오를 합친 합성어다.

중국에서 궈차오 열풍이 부는 배경에는 최근 중국 소비 시장의 주력으로 부상한 2030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MZ세대로 불리는 ‘지우우허우(1995~1999년 출생한 세대)’ ‘링링허우(2000~2009년 출생한 세대)’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받았다. 또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며 자라난 세대다. 이에 다른 세대에 비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소비와 직접 연결된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는 지난해 자사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우우허우가 주력 소비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021년과 이들이 등장하기 이전인 2016년의 소비 제품 검색 트렌드를 비교했다. 2016년에 제품에 대한 검색 비중을 보면 외국 제품이 55%, 중국 제품이 45%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중국 제품에 대한 검색 비중이 75%를 넘어서며 외국 제품을 크게 추월했다.

궈차오 바람의 출발점은 스포츠 브랜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 중국 스포츠웨어 시장의 절대강자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였다. 하지만 이들의 중국 시장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의 올해 1분기 중화권(중국·홍콩·마카오·대만) 매출은 35% 급감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도 최근 분기(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중화권 매출액이 21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했다. 나이키는 직전 분기에도 중화권 매출액이 20%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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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나이키 매장. 최근 인권 탄압 등의 이슈로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의 매출이 감소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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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MZ세대 중심으로 ‘궈차오’ 열풍

이들의 빈자리는 중국 토종 브랜드인 안타와 리닝이 채우고 있다. 안타는 지난해 아디다스 매출을 제치고 중국 스포츠웨어 2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위 나이키와의 격차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4위인 리닝 역시 아디다스를 빠르게 추격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중국 토종 스포츠 브랜드들의 부상은 궈차오 열풍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안타는 1999년 당시 세계적인 탁구 선수 쿵링후이(孔令輝)를 모델로 발탁해 “나는 선택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이라는 TV 광고를 내보냈다. 이 광고는 중국에서 애국 마케팅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다.

안타가 애국 마케팅의 원조라면 리닝은 궈차오에 불을 붙인 브랜드다. 다른 의류 브랜드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과 달리 리닝은 티셔츠 앞면에 한자로 ‘중국 리닝’이라는 글자를 선명하게 인쇄했다. 중국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MZ세대들은 이 같은 마케팅에 열광했다.

한때 중국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K뷰티’ 열풍이 식어버린 배경에도 궈차오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K뷰티를 대표하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중국 매출은 매년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무혁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화장품 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2.2%에서 2021년 17.8%까지 하락했다.

중국 MZ세대들은 화시쯔, 완메이르지와 같은 중국 화장품 브랜드에 지갑을 연다. 이들은 왕훙(인플루언서)이나 SNS 마케팅을 통해 젊은 고객층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빠르게 영토를 넓히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K뷰티가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품질로 중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프리미엄 제품군에서는 에스티 로더 등 유럽 브랜드에 밀리고 중저가 상품 군에서는 중국 토종 브랜드에 밀리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들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중국 브랜드들이 외국 럭셔리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영역을 빠르게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수 시장이 대표적인 예다. 치웨이투수관, 관샤 등 젊은 중국 브랜드들이 만든 향수 제품의 인기는 샤넬 N°5의 인기를 넘보고 있다. 중국 MZ세대들은 단지 유명하고 비싼 유럽 브랜드 대신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더 부각시켜주는 향에 열광했다. 중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버블티와 중국 화폐 런민비 냄새가 나는 향수 제품이 큰 인기를 끌었고 베이징·상하이 등 각 도시의 물맛을 향으로 표현한 제품도 중국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국 영화, 한국 화장품보다 중국산 선호

중국 극장가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핵심 관람 층인 MZ세대들이 미국 영웅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중국 감독이 제작한 중국 영화를 더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10년 전인 2011년에는 중국 흥행 영화 ‘TOP 10’ 가운데 6편이 미국 영화였지만 2021년에는 단 2편에 그쳤다.

올해 초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 박스오피스도 애국주의 영화가 휩쓸었다. 춘제 연휴 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는 <장진호>의 속편인 <장진호 전투의 수문교>였다. 중국 영화 거장 천카이거 감독의 <장진호 전투의 수문교>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사를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의 승전사로 간주하는 대표적인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다. 1950년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벌어진 장진호 전투 후반 수문교에서 철수하는 미군과 중국군이 벌인 사투를 그렸다.

<장진호 전투의 수문교>의 뒤를 잇는 상위 5위를 모두 중국산 영화가 차지했고 할리우드 영화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과거 중국 경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처져 있을 때 중국인이 선진국 문화에 끌리는 측면이 강했지만, 지금은 중국 관객이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중국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류박 알리바바그룹 부총재는 “향후 중국 소비 시장을 주도할 MZ세대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자국 제품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높다”며 “중국에 진출하는 해외 기업들은 이 같은 중국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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