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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아들아 미안…아빠는 어쩔 수 없는 타이거즈인가 봐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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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운씨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아들에게 야구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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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2004년 여름. 난 미국 아이다호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 룸메이트 제임스는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매일 야구를 보고, 야구 게임을 하고, 야구 카드를 모으는. 그는 특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이었다. 한 번은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샌프란시스코 팀을 응원하는지 물었는데, 그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 팀을 응원했고, 자신도 따라서 응원하게 되었다고.

그런 제임스가 어느 날 나에게 같이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고, 티브이(TV)에선 그 홈런볼을 누가 잡았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아 나도 같이 길을 나섰다. 그렇게 장장 왕복 4일이 걸리는 야구 직관 일정이 시작됐다.

우리는 야구 경기 3일 전 제임스 아버지 집으로 갔고, 거기서 다음 날 새벽 6시에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제임스 아버지가 사셨던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차로 15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2∼3번 정도 쉬면서 식사를 하고 난 뒤 쭉 달려 결국 샌프란시스코의 제임스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다 됐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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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C파크를 방문한 전종운씨와 제임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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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야구 경기 하나 보겠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그때 제임스와 그의 아버지는 지친 기색도 없이 쉴 새 없이 야구 얘기를 했다. 그들은 본즈 홈런 얘기 하나만으로도 웃음꽃이 넘쳐났다. 그렇게 고대하던 경기 당일, 나는 난생처음 야구 경기를 직관했다. 그것도 미국 메이저리그(MLB) 성지 중 하나인 SBC파크(현재 오라클파크)에서.

비록 아쉽게도 우리가 직관을 간 날 본즈는 부상 결장했으나, 제임스 부자는 계속 야구 얘기를 하면서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자기 팀을 향한 응원에 목소리를 높였고, 상대 팀을 향한 야유도 잊지 않았다. 비록 본즈의 홈런볼은 없었지만, 이날 기억은 내 머리에 생생하게 각인돼 내가 야구팬이 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야구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어가던 제임스 부자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아들이 생기면 저렇게 같은 팀을 응원하면서 야구를 보러 다니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기아(KIA) 타이거즈 팬이 됐다. 연고는 서울이었으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지완(KIA)의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봐 버린 탓이다. 그 이후는 보통의 타이거즈 팬들이 그렇듯 애증의 관계가 돼버렸다. 잘할 때는 너무 좋지만, 못 하는 날은 욕을 하는 그런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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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50일이 된 아들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를 찾은 전종운씨. 본인 제공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15년 아들이 태어났다. 나는 태어난 지 50일 된 아들을 데리고 광주 챔피언스필드로 직관을 갔다. 다행히 그날 기아는 승리했고, 나는 감격에 벅차올랐다. 아들과 함께해서 더없이 좋았다.

아들과 캐치볼이 가능할 정도 나이가 되니, 제임스 부자가 그랬듯 아들과 같은 팀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야구를 좋아하게 하려면, 일단 야구장에 가야 한다. 그런데 광주까지 가기에는 내 체력, 아내 눈치, 첫째 딸 학원 시간 등 이것저것 장애물이 많았다.

결국 집과 가까운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팀을 응원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로 보였다. 아들과 자주 직관을 갈 수도 있고, 나중에는 아들이 스스로 팬이 돼 응원하기에도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지인들 추천으로, 지금은 아들과 엘지(LG) 트윈스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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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전종운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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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동반 응원’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좋아하는 팀을 바꾸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아들과는 엘지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나 혼자선 여전히 기아 기사를 찾아보고 하이라이트를 챙겨본다. 잠실 직관을 가서 엘지와 기아 경기를 봤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1루 엘지 응원석에 앉아 아들과 이기고 있던 엘지 응원가를 부르다가, 기아 소크라테스가 홈런을 쳤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든 채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던 엘지 응원 팬들의 따가운 눈초리란…. 창피해하며 내 소매를 잡아끌던 아들에게 귓속말했다.

“아빠 속에는 빨간 피가 흐르고 있어!”

18년 전, 오라클파크에서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들과 한 팀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두 팀 경기를 보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행복한 상상을 한다. 만약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다면….

전종운(서울 서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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