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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보이스피싱 계좌에 남은 잔액, 통장 주인도 돌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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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금감원 환급거부 취소

“범죄 사실 몰랐고, 본인 돈 섞여 있어”


한겨레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던 은행 계좌의 주인도 해당 계좌에 남아있던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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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던 은행 계좌의 주인도 해당 계좌에 남아있던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좌주가 보이스피싱에 본인 계좌가 이용된 사실을 몰랐을 수 있고, 또 본인의 돈이라는 사실이 소명됐다는 취지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본인 명의로 개설된 은행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던 계좌주 ㄱ씨가 통장에 남아있던 잔액을 돌려달라며 금융감독원(금감원)을 상대로 낸 소멸채권 환급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금감원은 피해자 구제를 위해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계좌의 지급을 정지한 뒤, 계좌주가 돈을 찾아갈 수 없도록 채권을 소멸시킨다. 이 경우 계좌주가 본인 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돈을 환급해 주는데,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사실을 계좌주가 알았을 경우엔 환급마저 거부한다.

2020년 1월9일, ㄱ씨는 은행 직원을 가장한 보이스피싱 사기단에게서 서민생활자금 대출 관련 문자를 받았다. 사기단은 은행 직원처럼 조작한 프로필을 제시하며 “통장 거래 실적을 쌓아야 낮은 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고 ㄱ씨에게 거짓말을 했다. 사기단에게 속아 넘어간 ㄱ씨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은행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을 넘겼다.

사기단은 같은달 15일부터 피해자들을 속여 뜯어낸 돈을 ㄱ씨 계좌로 받기 시작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ㄴ씨는 15~17일 사이 총 3350만원을 ㄱ씨 계좌로 송금했다.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ㄱ씨는 다음날인 18일,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의 돈 2500만원을 같은 계좌로 받았다. ㄱ씨 통장에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과 자기 부동산 거래대금이 섞이게 된 것이다.

범죄 피해를 알게 된 ㄴ씨는 같은달 20일 은행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은행 쪽은 ㄱ씨 계좌를 지급정지 조처하고 계좌에 남아있던 돈 2009만원의 채권소멸절차 개시를 요청했다. 금감원이 개시한 채권소멸절차에 따라 같은해 4월1일 ㄱ씨는 계좌에 대한 권리를 잃었고, 통장에 남아있던 돈 2009만원은 피해자 ㄴ씨에게 지급됐다. ㄱ씨는 금감원에 해당 돈의 환급을 청구했으나,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하는 환급청구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행정심판에서도 구제받지 못한 ㄱ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ㄱ씨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기범들이 ㄱ씨에게 은행 직원이라는 조작된 프로필을 제시했는데도 ㄱ씨가 실제 직원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사기범들에게 계좌번호 등을 전달한 과실이 인정되나, 이를 고의에 가까운 정도의 중대한 과실로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계좌로 부동산 거래금을 입금받은 등의 사정을 보면 이 계좌가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500만원 중 500만원은 사기범들에 의해 인출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여 원고 역시 피해자에 해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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