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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통령도 물러날 판…산유국인데 기름값 올라 발칵,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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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5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인플레이션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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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에콰도르에서 연료값 상승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면서 정치·사회적 혼란이 지속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13일째를 맞은 25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좌파 계열 야당(희망연대)은 소요사태를 책임지라며 대통령 탄핵안까지 꺼내 들었다고 로이터·AP 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연료값 인하" 전국 시위에 6명 사망



지난 13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원주민들에 의해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이날 학생과 농부 등 경제 취약 계층 1만4000명이 에콰도르 수도 키토를 중심으로 합세하며, 동시다발적인 전국 시위로 확대됐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한 양상으로 발전했다. 또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6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등 유혈사태로 번졌다.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은 지난 24일 폭력적인 시위대를 향해 "쿠데타를 시도 중"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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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25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연료값 인하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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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을 중심으로 한 에콰도르토착인연맹(CONAIE)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연료 가격 인하 등 물가 안정이다. AFP 통신에 따르면 에콰도르의 경유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1달러에서 1.90달러로, 휘발유 가격은 1.75달러에서 2.55달러로 2배 가까이 치솟았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자 연료 수입 비용 부담은 더 가중됐다.

이에 CONAIE는 휘발유 2.10달러, 경유 1.50달러로 인하해 동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에콰도르 정부는 연료 가격 인하에 연간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거부했다. CONAIE 지도자인 레오니다스 이자는 AFP에 "결론이 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며 "더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미 5위 산유국도 국제유가 오르자 '휘청'



산유국인 에콰도르는 2020년 기준 브라질·콜롬비아·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에 이어 남미에서 5번째로 원유를 많이 생산하는 국가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에콰도르 원유 생산량은 하루 48만3000배럴 수준이다. 또 에콰도르의 원유 확인 매장량(Proved reserves)은 83억 배럴로, 남미에서 세 번째로 많다. 원유는 에콰도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품이다.

앞서 라소 대통령은 민간 투자 유치와 신기술 개발 등으로 오는 2025년까지 원유 생산량을 일일 100만 배럴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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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러나 에콰도르 내에서 쓰이는 휘발유·경유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 중이다. 에콰도르 내 정제 기술과 시설이 부족해 원유를 수출하고 휘발유·경유 등 정제유를 재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콰도르의 일평균 정제유 수요는 약 25만 배럴이지만, 정제 능력은 17만5000배럴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에콰도르의 정제유 수입액은 43억3300만 달러(약 5조6000억원) 규모에 달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연료를 수입하는 데만 매년 28억 달러(약 3조6000억원)의 보조금을 지출해 왔다.



대통령 탄핵까지 꺼낸 야당



이날 오후 에콰도르 의회는 라소 대통령 퇴진 안건을 표결에 부칠지 결정하는 회의를 열었다. 재적의원(137명) 3분의 1 이상인 야당 의원 47명의 찬성으로 진행됐다.

좌파 성향의 전임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인 야당 의원들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와 내부 소요 사태'에 대해 라소 대통령에게 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회의 종료 후 의원들은 72시간 안에 표결에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고 AFP 통신은 정했다.

탄핵은 재적의원 3분의 2가 넘는 92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알프레도 보레로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새 대통령 선거 준비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라소 대통령은 현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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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에콰도르 원주민이 촉발한 반정부시위로 민간인 최소 6명이 사망하고 수십 여명이 부상하는 등 유혈사태로 번졌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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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콰도르 정부는 이날 CONAIE 지도부와 첫 공식 회담에 나서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이날 회담에서 정부는 CONAIE의 요구사항 중 하나였던 24개 주(州) 가운데 6개 주에서 선포한 비상사태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라소 대통령 측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정부는 평화를 위한 공간 창출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CONAIE는 회담 조건으로 원주민의 전통적인 집결지인 수도 키토의 공원을 비무장화할 것을 촉구해왔다.



원주민단체, 에콰도르서 목소리 커져



110만 명 규모의 에콰도르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결집력 면에선 어느 집단 못지않다. 앞서 지난 2019년 당시 11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한 시위 끝에 정부는 연료비 보조금 폐지 계획을 철회시켜야 했다. 또 1997년, 2000년, 2005년 당시 에콰도르 대통령 3명이 임기 중 중도 퇴진한 것도 원주민 시위가 영향을 미쳤다.

남미 사회과학 연구소(FLACSO)의 프랭클린 라미레즈 정치사회학자는 AFP에 "1990년 이후 CONAIE는 에콰도르의 주요 사회 조직으로 부상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AFP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인해 에콰도르 경제는 하루 약 5000만 달러(약 650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에콰도르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로에콰도르는 시위로 230개 이상의 유전이 일부 폐쇄되며, 약 6만4300배럴의 생산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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