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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아투 유머펀치]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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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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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學生諸未十 先生來不謁’ ‘서당을 일찌감치 알고 왔는데, 방 안에는 모두 귀한 물건이네.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선생은 나와서 아는 척도 않네’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의 풍자시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이다. 추운 겨울날 어느 시골 서당을 찾아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으나 미친개 취급을 당하며 쫓겨나자 야박한 인심과 몰지각한 훈장을 질타한 시(詩)다.

이 시는 속된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파격적 실험을 보여준 것은 물론 걸쭉한 육담을 원용했다. 욕설 풍자시를 통해 민중과 정서적 교감을 이루면서 뒤틀린 세태와 가진 자들의 위선과 탐욕을 통쾌하게 비판한 것이다. 한글로 읽으면 지독한 욕이 되는 이 한시가 인구에 회자하는 이유이다. 이른바 집단지성(集團知性)이 살아있는 사회였다면 이 같은 반지성적 형태의 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민만규라는 고향 친구가 시인이 되었다. 평생을 체육인으로 살아온 그가 몇 해 전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를 문학으로 채우며 등단을 하고 시집을 낸 것이다. 이별의 아픔과 삶의 고독을 그렇게 시로 승화시켰다. ‘시인이 된 청소부’가 있으니 그는 ‘시인이 된 경비원’이 된 셈이다.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을 문학적으로 발효시킨 것이다. 적어도 ‘죽은 시인의 사회’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의 말투와 어법들은 어찌 이리도 부박하고 자극적인가. 마치 설익고 변질된 술맛 같다. 특히 정치꾼들의 언어는 더 극성스럽고 천박하다.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이재명을 반대하는 ‘똥파리’, 이재명을 열성 지지하는 2030 여성과 남성을 통칭하는 ‘개딸’과 ‘냥아’ 그리고 나이가 좀 든 4050 남녀 지지자인 ‘개삼촌’ ‘개이모’에 이르기까지, 가짜와 욕설 이미지의 접두어인 ‘개’의 화려한 변신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집단지성이 있는가. 품격 있는 민주주의의 관건은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이지 감정과 광기 어린 집단적·적대적 의견 배설이 아니다. ‘대깨문’과 ‘태극기부대’처럼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즐기고 악용하는 정치인과 그 행태 또한 더 사특하고 반지성적이다. 적어도 ‘개딸’과 ‘똥파리’라는 용어를 양산하지는 않는 품격 있는 ‘시인의 사회’는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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